상처 바라보기.. by 그루터기

이제 우리는 사역자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뿐 아니라, 직업으로 인한 독특한 어려움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상처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역자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 주의 깊게 이 상처를 싸매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때 사역자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잘못 이해하여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사람들에게 사역자 자신의 경험을 치유의 원천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부르심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헌신된 사역자에게 있어 외로움이란 부인하고 무시해야 할 고통스러운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면 사역자는 더 이상 그것을 부인할 필요가 없고, 그러할 때 사역은 치유를 일으키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고통을 피상적으로 공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깊은 인간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헨리 나우웬, 최원준 옮김, 『상처입은 치유자, 두란노,  2008(56쇄), 117-119쪽 -






정보의 언어와 친밀함, 관계의 언어.. by 그루터기

나는 안셀름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말하는 상태로 바뀐 중대한 변화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독어록, Monologion>에서 뛰어난 명석함과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을 설명했다. 그 작품은 서방 세계의 뛰어난 신학적 성취물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아무리 옳은 사실들을 많이 말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릇된 언어로 그 모든 것을 말해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그와 같은 모든 내용을 <담화, Proslogion>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의 언어가 언어 II(유진 피터슨은 언어 II를 '정보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에서 언어 I(1인칭 화법, 하나님에 대한 응답, 하나님과 나누는 개인적인 대화)로 변화된 것이다. '담화(Proslogion)'는 기도의 신학이다.

- 유진 피터슨, 차성구 옮김,  묵상하는 목회자, 좋은씨앗,  2009, 142쪽 -


 


안셀름, 인간이 되신 하나님 : 신앙과 이성, 구속이란.. by 그루터기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이은재 옮김,  인간이 되신 하나님,  한들출판사, 2007.


아래 내용은 해제 부분을 기록했다. 페이지 수는 이전 판본(2001년)의 것임을 밝힌다.  

A. 안셀름의 생애

대략 20년이 지나서 안셀름은 그의 가장 중요한 신학 작품을 기술하였다. "그리스도의 오심 또는 그 분의 인간이 되심이 인류를 구원하는데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이성으로써 고찰하려는" 작업으로 우리에게는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었는가?"(Cur Ceus homo)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의 안셀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행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신앙의 핵심으로 제시하기를 원했다. 신학자로서 안셀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근거를 뚜렷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가능성" - 안셀름에 따르면 이는 스스로 의무 지워진 것이다 - 과 죄로 말미암아 무기력에 빠진 인간의 "불가능성", 하나님의 "불필연성" 또는 책임/채무 없음과 인간의 "필연성" - 즉, 죄인의 의무인 배상 - 이 그것이다. "인간이 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완성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반해서 만일 하나님이 하실 수 있고 인간이 해야만 하는 배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신-인(神-人)이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필수적인 것이 아니겠는가"(D.D.h.II.6) (12-13쪽)

부르군드 왕국의 서쪽 경계선에 있는 아오스타(Aosta)에서 1033년 출생한 안셀름은 교황 그레고리 7세(1073-1085)와 영국왕 빌헬름 1세(1066-1087)와 동시대인이었다. 안셀름은 1056년 고향을 떠난 후, 3년여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1059년 노르만디에 위치한 베네딕트파 수도원 베크에 입문하였다. 그곳의 수도원장은 저 유명한 랑프랑(Lanfrank)이었다. 그는 파비야 출신이었으며, 성서와 교부들의 가르침인 영적인 자료에 의해 중세의 7학예(문법/수사학/논리학/수학/기하학/천문학/음악)를 가지고 주해하고 종합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법과 변증이라는 논리학을 신학하는데 주력하였던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안셀름은 교회의 교리를 논리와 변증의 방식을 통해 이해시키고, 이성의 정당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버지가 사망함으로 인해 그에게 내려진 백작의 직위를 물려받는 대신 안셀름은 1060년 베크 수도원의 수도승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 1063년 랑프랑이 카앵(Caen)의 대 수도원장(Abt)으로 떠나자, 그곳의 수도원 부원장(Prior)으로 1078년까지 일하였꼬, 1078년부터는 수도원장으로 1093년까지 봉직하면서 수도원 학교를 운영하였다. (13-14쪽) 1093년 12월 8일에는 캔터베리의 대주교직에 올랐다. 그러나 1095년 안셀름은 교황만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것이 문제가 되어 왕과 대결하게 된다. 1097년 다시 한번 교회의 자유와 성직자의 개혁에 관하여 왕과 대결함에 됨으로써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이 첫번째 망명생활에서 안셀름은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시었는가(Cur Deus homo, 1094-1098)"를 종결지었다. (17쪽)

1094년 교황 우르반 2세에게 보낸 "육신이 되신 말씀에 관한 서한"(Epistula de incarnatione Verbi)에서 이미 안셀름은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었는가에 대한 주제를 언급하면서 유명론자 로스켈리누스와 논쟁을 시작하였다.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5)는 콩피에뉴의 참사회원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은 세 본질과 마찬가지이므로 삼신(三神)으로 이해하게 되거나, 아니면 각 인격이 신적인 본질의 세 특성을 가지는 일신(一神)으로 이해하게 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만일 전자를 받아들인다면 삼신 가운데 다만 하나가 인간이 되었다거나 거꾸로 후자의 경우에는 사벨리우스식으로 전체신이 인간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앙론은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인격 안에서만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안셀름은 로스켈리누스의 명제를 변증법의 오용으로 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삼위일체론 내에서 하나님의 인간이 되심이 갖는 위치, 즉 어떻게 구원론 내에서 필연적으로 생각되어져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관심하였다. 안셀름에게 있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은 이성에 근거하는 필연적인(rationibus necessariis) 사건이었다. 전체 작품은 안셀름과 그의 제자요, 후에 베크의 수도원장이 된 보소(Boso)와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17-18쪽)

인생이 죄로 말미암아 손상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요청된 만족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때문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그리스도를(빌 2:8) 설명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에 필연적이었다는 사실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간이 되심이라는 이 필연성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이해하는 중심이 된다.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의지가 신적인 의지에 순종함으로써 양자에게 만족(satisfactio)이 되고, 죄로 인한 징벌의 상황에서 구원에로 인도하게 된다. 만족 또는 대가를 치룸으로써 죄로 인해 유보되었던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누가 하나님에 대해 이 일을 행할 수 있을까? 단지 신-인만이 하나님에 대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으며, 구속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 (19쪽) 

교황 우르반 2세와 영국 왕 윌리엄 2세 사이에는 여전히 갈등이 있었는데, 1099년 7월 29일 교황이 먼저 사망하였고, 일년이 지나 왕도 사냥 중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1100년 8월 2일). 안셀름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으며, 윌리엄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헨리 1세의 요청으로 인해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안셀름은 영국과 로마를 오가며 왕과 교황의 서신을 전달해 주곤 하였는데, 해묵은 문제인 왕을 통한 서임권의 금지와 충성 서약의 불변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망명길에 올라 리용에 머무르게 되었다.이 사건은 서임권 투쟁의 정점이 되었으며, 안셀름은 1103년 12월부터 1106년 9월까지 망명생활을 하였다. 1107년 8월 1일 웨스터민스터 제국의회에서 안셀름은 왕과 대주교 앞에서 교황과 합의한 사항은 선언하였다(Concordat). 그것은 감독이나 수도원장을 선출하여 서임권을 발행할 때에 왕은 영적인 표지물인 반지와 지팡이를 대주교에게 위임함으로 수여권은 상실하지만, 교구에 딸린 세속권은 여전히 왕이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셀름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안셀름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와 참된 순종은 동일한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자유를 따라 기꺼이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화해라는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안셀름이 받아들인 화해는 두 권력간의 중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왕의 충성과 교회의 자유와 평화를 허락하시는 이- 이해하였다. (20-21쪽)

B. Cur Deus Homo를 중심으로 이해한 그의 신학사상 

카롤링거 시대의 신학작업은 성서와 교부들의 권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신앙과 가르침의 중요성이 권위의 문제 아래에서 연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권위를 입증하고 이해하는 작업 과정에 있어 이성과 세상의 학문이 주요한 보조 자료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편 점점 증대되는 비기독교 문헌들의 지식과 그 내용이 갖는 비기독교 사상들이 전승된 권위의 가르침들과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결과로 신앙의 조명을 받지 않는 이성은 참된 내용을 가져올 수 없다고 보았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전승된 권위에 결부되어 있으며 신학은 권위의 해석에 기인한다. 때문에 변증학은 해석의 기술이 되었다. 안셀름은 변증법을 이용하여 신학을 학문으로 만들어 놓은 기독교 합리론의 대표자가 되었던 것이다. (22-23쪽)

안셀름의 첫 신학 작품은 Exemplum meditandi de ratione fidei(Monologion)로 신앙의 근거에 관한 명상의 한 예이다. 안셀름의 전기를 쓴 에아드머는 이 책의 의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성서의 권위를 완전히 차단한 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찾고 발견하며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앙인지를 반박할 수 없는 근거들로써 증명하려는 것 외에는 다름이 아니다." (24쪽) "이성을 통하여"만은 하나의 강령이다. 안셀름이 제기한 문제는 도대체 권위가 실재의 내용을 가지는가하는 것이었다. 실재와의 연관에서 이성은 중재의 기능을 가진다. 여기서 "이성으로만"은 "신앙으로만"과 대립 개념이 아님을 충분히 지적해야 한다. 안셀름은 신앙을 제쳐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강령을 통해 신앙을 확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즉, 진리에 대한 노력으로서 신앙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문제들이 순수한 사유적인 질문이 아니라, 이단들의 입장이나 불신앙인들의 그릇된 전제들에 관한 것이므로 오히려 그의 정통신앙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24-25쪽)

이제 새로운 작품, 그 책은 Fides quaerens intellctum(Proslogion)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하나님은 진리 안에 계심과 그 분은 지고의 선이심을 그리고 신적인 본질에 관해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독백에서 말을 건넴으로 타이틀이 바뀌어 간 처럼, 주제 역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발전함으로써 "인간은 그 정신이 하나님을 바라봄을 지향하며 그가 믿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이해는 바라봄 또는 관조와 동일하다. 이 점에서 안셀름은 어거스틴과 플라톤주의를 따른다. 마찬가지로  이해를 위한 추구는 출발점이 되었다. 신앙은 권위에 의해 중재되는 내용이다. 동시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노력, 즉 하나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이성이 여기에 결부된다. 우리에게는 "존재론적 신 존재증명"으로 잘 알려진 제2장에서 안셀름은 위대한 발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더 이상 위대한 것이란 생각되어질 수 없는 그 무엇"이시다. (25쪽)

그러나 안셀름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이성적인 증명이 신앙을 가져오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사유와 신앙의 간격 또는 사유와 의도간의 부정합이 존재한다. 안셀름은 이러한 간극을 조정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제 하나님에 관한 인식은 기독교의 구속론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오직 이성으로만" 증명하려는 시도를 안셀름은 그의 저서 Cur Deus Homo에서 보여준다. 이 책의 저술 의도는 철저히 하나님-인간을 통한 구속이 발생해야만 함을 순수 이성적인 증명으로 보여주려는 데 있다. 그 결과는 중세 경건의 한 양식이었던 기독교적인 참회의 정당화이다. (26쪽)

무한한 신에게 죄를 지은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죽음은 신-인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미 어거스틴은 폭력과 정의가 서로 대립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제 안셀름은 내적인 논리의 근거를 사용하여 폭력이 아니라 정의의 양식을 선택했다. 때문에 자명한 진리 안에 신앙의 신비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정의(정당성)는 불행을 초래한 자의 징벌을 요청한다. 이점에서 하나님의 상처난 명예가 회복되는 만족이 발생한다. 이것이 안셀름에게 있어 새로운 사실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구속양식을 통하여 그분의 정의가 드러나는 것으로 만족했다. 죄인을 징벌하는 것은 정의의 행위이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사탄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행하는 집행기관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안셀름에게 있어 사탄이 인간에 대해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인간이 항상 죽음의 존재로 양도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가져오는 일인가? 중세의 드라마에서 상처 입은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주어진 정당한 징벌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인 방식, 즉 불가능성으로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한다. 만족(보상)이 필수적이긴 하나, 명예를 더립힌 자의 말소를 통하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적극적인 방시이 요청되었다. 즉 하나님 자신으로부터의 만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는 하나님의 명예와 정의를 손상시키는 것이며 그에 대한 속죄는 정의와 희생의 결합에 의해 가능하므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은 필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족"이란 이미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어떤 것을 다시 되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상환하는 것으로, 객관적으로는 탈취한 법적 자산을 되돌려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영역에서는 훼손된 명예의 치욕을 정당하게 만족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이제 형벌의 개념과 구별되어 사용된 만족설은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닌 공로없이 주어지는 선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써 보상과 속죄시에 발생하는 공로의 축적은 중세교회읭 자기이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거이다. (27-28쪽)

이성은 권위에 따른 신앙에 대립하는 명제이며, 안셀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이같은 설명이 갖는 목적은 기독교 구속론의 진리를 자명하게 하려는 필연성에 있다. 필연성은 논리적이어야 하며, 논리는 그 자체로 설명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행위를 수반한다. 필연성은 하나님이 이성에 의해 강요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행위가 이성을 하나의 필연적인 행위로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성의 빛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는 하나의 필연적인 태도이다. 여기에 선하신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가 사람의 창조로 이어진다. "오직 이성으로써" 하나님 안에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는 단지 하나님 자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자되심을 인하여 인간에게 행복한 불멸성을 제시하시고, 당신의 하나님되심을 인하여 췌손된 명예를 묵과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 안에 발생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필연성으로부터 기독교의 구속론에 대한 이성적인 자명성이 진리로 제시되었다.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획득된다. (29쪽)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명예만을 생각하는 독재적인 봉건군주로 전락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안셀름의 속죄론은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 역할의 약화를 가져왔다. 인간 편에서 볼 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필연성을 놓고 볼 때 죄의 책임을 인간에게 돌린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또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필연성이라면 더 이상 인간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는데, 그는 신적 인과율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셀름의 인간이해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주관적인 측면을 매우 약화시켰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분의 진정한 사랑이 서 있을 자리가 없다. 계속되는 비판의 초점인 신적 인과율, 즉 명예와 정의를 보존하기 위해 인간의 구원이 필요하였다는 사실은 인간을 위해 구원하셨다는 것을 젼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부동의 필연성이었다고 할 것이다. (30쪽)




새 밥 짓는 사람.. by 그루터기

시는 나 자신만을 위한 배설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소통의 언어이므로 항상 새로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오줌을 누는 일이 아니라 밥을 먹는 일입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일이 아니라, 똥을 누기 전에 먼저 밥을 먹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밥을 먹을 때마다 새 밥을 먹길 원하지 식은밥 먹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시도 항상 새로움의 밥을 먹길 원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항상 새 밥을 짓는 사람입니다. 항상 공부해야 하고 사물과 인생의 현상과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혀야 하는 사람입니다. 

- 정호승,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09,  80쪽 -

새 밥 짓기를 두려워 말고..
새 밥 짓기이 실패를 염려하지 말고..
새 밥 짓기에 공을 깊이 들여가자..





안셀름, 프로슬로기온 : 신앙과 이성, 신 존재.. by 그루터기











  안셀름 지음, 공성철 역,  프로슬로기온, 한들출판사, 2005.


나에게 당신의 빛을 쳐다 볼 수 있게 하소서. 비록 멀리서나 깊은 데서라도 말입니다. 나로 당신을 구하도록가르치시고 구하는 자에게 당신을 허락하소서.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가르치시지 않으면 당신을 구할 수 없고, 당신이 주시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시여, 내가 고백하며 내가 감사하옵는 것은 내 안에 "당신의 형상"을 창조하셔서 내가 당신을 기억하면서 생각하며, 사랑하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믿기 위해 알려하지 않고 알기 위해서 믿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도 믿기 때문입니다. (1장 내용 중) 아래 내용은 해제 부분을 기록했다.


1. 안셀름의 생애

안셀름의 개인 생애의 특징은 시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살던 1033-1109년은 교회 정치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바른 정립을 이루기 위한 충돌로 점철된 시기였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의 정화를 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레오 9세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개혁 성향의 성직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11쪽) 이들은 교회 안에 만연된 성직자의 축첩과 성직매매를 교회의 적으로 보고 제거하려 했다. 교회 내적 문제는 더욱 확대되어서 평신도의 성직 임명도 성직매매라고 정의내려졌다. 이것은 963년부터 오토 제국 이후로 당시까지 전통으로 되어왔던 고위 성직자의 임명 시에 왕의 재가를 받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영국교회에서 성직임명 문제가 해결된 것은 바로 안셀름이 그 문제의 핵이 되어서 망명의 길을 떠나고 그가 다시 대주교로 활동하게 되는 것을 결정하게 되는 1107년 8월의 웨스트민스터 궁정회의에서이다. 그리고 제국에서는 1122년 보름스 회의에서의 대타협으로 성직임명 논쟁은 일단락을 맞게 되었다. 그 중 과격한 개혁 성향들의 극단적 태도는 교회사적으로 알려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10154년)를 가져왔다.(12쪽)
 
교회 내적으로 동시대에 학문적인 노력과 기존 권위와의 관계에 관한 치열한 공방이 있던 시기라고 하겠다. 11세기에 들어서 직업 선생들이 등장하면서 수도원 학교와 본당 학교 간에 노골적인 투쟁이 발생하였다. 이 극단적인 모습이 1059년과 1079년 두 번의 공의회에서 판결난 소위 제2차 성찬논쟁이다. 베렝가르와 랑프랑 사이에 벌어진 이 논쟁은 단순한 성찬 논쟁이 아니라 기존 권위와 이성을 동원한 변증학 사이의 조화 문제였다. 과연 어디까지 이성이 교회의 신앙 조항을 다룰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고 하겠다. (12쪽) 베렝가르에게 변증론은 문법적 변증론이다. 곧 단어들의 언어적인 의미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랑프랑에게는 사고 전개 과정의 논리를 분석하는 것이 변증론이었다. 이 때문에 문법적 변증론은 본문에 대한 전래되어 온 이해와 충돌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반면에 랑프랑의 이해 같은 논리적 변증론은 사고의 구조만을 분석하고 드러내고, 논리 법칙 비교 같은 것은 하지 않았기에 성경과 교부들의 권위와 상충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랑프랑의 논리적 변증론은 바로 스콜라의 아버지라는 안셀름에게도 전승되었다. (13쪽)

서로 상이한 성격의 부모를 만나 이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학문활동을 시작하고 꽃을 피웠지만 그의 성직의 길은 대륙과는 전혀 다른 영국 땅에서 이루어졌다. 이 모습은 수사에서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길과 합치된다. 그리고 이렇게 대조되는 환경의 변화와 같이 하여 그의 영혼의 길은 맥을 같이 한다. 수사와 학자로 있던 베크에서의 1093년까지의 삶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학자로서도 그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안셀름을 사상사에서 거듭 다루게 되는 그 명성의 근거는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1093년 이후에 나온 그의 저술에서 가장 값진 이름은 Cur deus homo이다. 우연일지 아니면 영혼의 곤고함을 끄집어내는 절규인지 이것은 가장 고단한 시절의 작품이었다. (14쪽) 그는 화해의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학문과 경건의 삶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15쪽)

2. 저작

일단 저작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서 다루게 되겠다. 곧 안셀름이 베크 수도원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저술된 문서들이고(1063-1092년), 다음은 켄터베리의 대주교로서의 저술을 말한다(1093-1109년). 다음으로 양쪽 시기에 걸쳐서 완성된 진정한 문서들을 제시하고, 제자들의 2차 문헌과 진정성이 의심되는 문서들을 열거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겠다. (15-16쪽)

3. 프로슬로기온 이해를 돕기 위한 안셀름의 신학적 노력 해석

1) 집필 동기

많은 문서 활동에서 보여주는 안셀름의 노력은 신학이었다. Theologia 곧 하나님에 관하여 신앙적으로 가르침으로 알려진 내용들을 이해하려는 것이 그가 추구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신학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1쪽) 이성을 수단으로 성경과 교부들의 권위와 무관하게 진행된 안셀름의 신학적 작업은 그의 문서적 작업의 시작부터 있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조신한 태도로 출판한 첫 작업인 <모놀로기온>에서 안셀름이 가진 목표는 바로 이성적인 작업이었다. "그 글 안에서는 아무것도 성경의 권위에 따라 설득되어서는 안 되었다. 대신 개별적인 탐구를 통해 얻어지는 결론이 주장하는 내용은 무엇이든지 명확한 형식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논증, 단순한 설명을 통해서 이성적 필연성을 간결하게 강조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필연성을 명백하게 보여주어야 했다."(22쪽)

<프로슬로기온>의 서론은 저술 동기를 보여주고 있다. "후에 이 책자는 많은 논증의 연결고리로 엮어져 있다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 하나의 논증을 발견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곧 자기 검을 위해서 다른 논증이 필요 없으며 이 자기 논증 하나만으로 아래의 것들이 증명되는 논증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참으로 존재하시며, 그는 최고의 선, 곧 자신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만물은 자신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선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를 필요로 하는 최고선이며, 우리가 신적 본질에 관해서 믿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바로 그것이다." (22쪽) 논증의 방법만이 새로운 것이었다. 곧 신학의 내용이 아니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 점에서 두 책은 하나의 신학적 프로그램이다. <모놀로기온>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에 <프로슬로기온>의 2-4장에서 보여주는 존재증명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모놀로기온 전체와 프로슬로기온 5-26장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는 면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안셀름 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 그의 저술 활동의 첫 두 권의 책 중에서 프로슬로기온이 바로 안셀름의 이름을 역사에 남게 한 저작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안셀름 신학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이후 사상사에서 기라성 같은 존재들이 모두 안셀름의 족적을 딛고 갔다고 할 수 있다. 논쟁은 크게 <프로슬로기온>에서의 안셀름의 노력은 철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신학적인가하는 질문과 그의 신존재증명은 성했다고 할 수 있는가로 두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3쪽)

2) 내용과 구조 분석

이 책자는 2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1장은 하나님을 명상하도록 끌어올리는 장이다. (25쪽) 2-4장은 하나님을 명상하되 그의 존재하심을 다루고 있다. 5장은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존재와 선을 가능하게 하는 자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6장에서 11장까지는 모두 최고선의 규정과 존재가능성을 따지고 있다. 그렇다면 5장은 최고선이 무엇인가를 이끌어내고는 증명의 제목으로 제시한다. (26쪽) 하나님은 스스로가 기준이라는 것으로 최고선의 존재와 기준을 말하면서 5장부터 시작된 논의를 정리하고 나서(12장) 여기서 자연럽게 파생되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다루기 시작한다(13장). 23장에서 이 유일성은 삼위일체라는 전통적 신론을 잊지 않는 신앙인으로 해석해 주면서 마치는 데까지 발전된다. (27쪽) 24장부터는  하나님, 곧 최고선이 베푸는 것에 대한 상상으로 넘어간다. 26장에서 그 은택을 말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마친다. (28쪽)

하나님을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시작된(1장)  노력은 하나님은 계시다는 것을 말하였고(2-4장), 그 하나님은 최고선이시다(5-26장)는 것을 말하였다. 이것이 안셀름이 선론에서 말한 내용이다. 프로슬로기온이 가진 특별한 것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논증을 발견함으로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곧 "더 이상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가 발견한 형식이 그가 다루는 모든 부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형식은 하나님, 곧 최고선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29쪽)

3) 작업 목적과 수단

"이해를 구하는 신앙"이라는 <프로슬로기온>의 이전 제목은 믿는 바 곧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해의 대상이 곧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29쪽) 안셀름의 존재 증명은 '이해'라는 지성적인 존재에게라면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그 정신적 행위에서 결론지어지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은 결국 "최고의 선"이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개념은 "무엇보다 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31쪽) 이해의 작업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믿음이 이해의 수단이라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안셀름의 말은 믿음이 이해의 출발이라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믿는 바를 이해하려고 하는 몸부림은 곧 믿음과 이해는 다른 것임을 가르쳐 준다. (32쪽) 안셀름의 목적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도 부인할 수 없도록 확실한 길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보겠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안셀름도 "예전에는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탐구하는 사람의 자세로 임했다"고 하였다. 그가 찾는 것은 이해였다. 그 작업은 믿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알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믿는 그의 기치처럼 신앙인으로서 이해하려는 작업이었다. 이해의 수단은 이성이었다. (34쪽)

4) 형식(기도)

이성으로 이해를 추구하고, 그 이해 단계는 신앙이 없는 자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상태라고 말을 한 그가 추구하는 이해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안셀름은 2장에서 하나님께 이해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이성적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2-4장에서 하나님 존재를 증명할 때 그는 이렇게 믿는 것을 이해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35쪽) 안셀름은 프로슬로기온 내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전개하여간다. (36쪽)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인 <프로슬로기온>은 신앙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장 사변적인 시도, 곧 신존재증명을 하는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슬로기온>에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신앙은 대상 앞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제목으로 "프로슬로기온", 곧 상대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 냉용은 믿지 않는 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서 철학적이라고 하겠다. 믿음으로 시작되지만 이성적인 작업인 신학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할 때 하나님을 모두 알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성으로 신학을 전개할 때 이해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한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해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래서 냉철한 이성적 작업을 기도로 하는 것이다. (37쪽) 

본문의 내용으로는 2-4장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5-26장에서는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모든 선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최고로 좋으신 분임을 냉철하게 논증하였다. 이 내용을 서술하기를 기도로 하면서 '형식'에서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두 개의 제목도 "신앙이 이해를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프로슬로기온"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38쪽) 신앙은 모두 비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신앙은 모두 이성적 작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그의 모든 삶을 의미한다. 학문적인 길을 가는 그의 신앙의 삶은 이성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이 길을 그는 기도하며, 곧 <프로슬로기온>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39쪽) 그는 하나님 신앙에서 출발했지만 권위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모놀로기온>과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하나님의 계심마저 선포가 아니라 증명의 대상으로 만들엇다. 이러한 자신의 신학적 작업을 그는 기도의 형식으로 풀었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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