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8-14 / 생명의 표징 / 김기석 목사 / 2008. 12. 25. by 늘푸른나무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하나. 이런 저런 마음 내어놓기

우리가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은 우리 자신이 주님의 포대기와 구유가 되어야 하고, 수건과 대야가 되어야 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역설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길을 가라고 하는 슬픈 소식이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라니! 이 기쁜 소식을 듣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천사들을 통해 나타나는 기쁜 소식,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이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영광, 이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인간은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 이런 저런 마음을 내어 놓은 것은 어찌 인간이 보고 싶어해도 마음 껏 볼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혜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은 그 곳에,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은 그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밝히 임하는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찬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끌어안고 가야할 것, 기쁜 소식을 날마다 듣기 위해 겸손히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또한 기쁜 소식을 날마다 듣기 위해 겸손히 평화를 누리며 이루어가는 결단과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다.

단순히 복음을 말로써 전파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 개혁적 혁신 운동에 뛰어 드는 것도 복음의 완전판이라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두울. 설교 부분 인용.

메시아는 불의의 역사를 바로잡을 권능자의 모습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의 모습이 너무 초라합니다.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 그것도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니요? 기독교의 놀라운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구주로 오신 분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역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협력 없이 세상을 새롭게 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처럼, 모든 사람과 피조물이 저마다의 몫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새 세상의 꿈은 늘 연약해 보입니다. 누군가가 그 아기의 품이 되지 않는 한, 누군가가 그 아기를 돌보지 않는 한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고 산고를 겪어낼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기독교의 상징이 무엇일까요? 웅장한 교회당, 파이프 올갠 연주, 밤마다 불 밝혀놓은 십자가 조형물? 아닙니다. ‘포대기와 구유’, ‘수건과 대야’, ‘십자가’. 이것을 빼놓고는 기독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연약한 이들을 감싸주는 포대기와 구유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 먼 길을 걸어 지치고 상한 사람들의 발/마음을 닦아주기 위해 몸을 낮추는 ‘수건과 대야’로서의 교회,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의 삶이야말로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고 포대기에 싸인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들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목자들이 살고 있던 세상의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폭력과 탐욕과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같아 모두가 희망의 노래를 부르지 못할 때 목자들은 하늘 군대가 부르는 영광송을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희망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땅에는 샬롬, 곧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임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평화의 사람, 또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목자들은 달려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았고,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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