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 양혜원 옮김, 그 길을 걸으라, IVP, 2007.
이 책을 처음 산 것은 작년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했던 즈음으로 생각된다. 머리글만 대충 훝어본 다음 다시 읽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결국 이 책은 내가 2009년 새해를 열었던 첫 번째 책이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바로 그 시간에 나는 약간의 흔적을 책 안쪽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2009. 1. 5. 학술정보관에서.
새해를 연 첫 번째 책..
내가 글을 쓴다면..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던져준 책이다..
성서가 움직인다..
그리고 길을 열어준다..
감동이고 은혜다.. 감사합니다..
유진 피터슨에 대해 잠시 살펴보면(뭐 그래봤자 책 표지 안쪽 날개에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는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Christ Our King 장로교회에서 30년간 목회자로 섬겼고, 현재는 리젠트 칼리지의 영성 신학 명예 교수로 있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인적사항을 통해서는 그가 맥코믹 신학교와 루터 신학교, 베일러 대학교의 조지 트루엣 신학교 등에서 다년간 강의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학교들 중에서 내 귀에 들어온 학교는 맥코믹 신학교와 루터 신학교 밖에 없다. 특히 맥코믹 신학교는 박용규의 "한국기독교회사 1,2"에서 초기 내한 선교사들에 관한 언급에서 익히 들었던 학교였다.
박용규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성경의 권위를 철저하게 확신하면서 복음의 열정에 투철한 복음주의 정신(솔직히 말하면 이 복음주의라는 게 뭔지 사실 수긍이 잘 가지 않는다. 여하튼)에 입각한 개혁파 복음주의자들, 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선교활동을 주관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출신 신학교가 바로 맥코믹 신학교였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469p 참조) 박용규 교수의 설명을 좀 더 인용하고자 한다. 이 학교 출신 선교사들은 "신학적으로 철저한 보수주의에다 청교도적 엄격성을 견지하면서도 청교도 개혁파 경건성을 겸비하는 개혁파 복음주의 전통에 확고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구칼빈주의 전통, 구학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부흥운동과 복음주의 연합운동에 대해서는 열려 있었다".
한국기독교회사 1,2권 내내 강조하고 있는 순수한 복음주의에 대한 강조에 그닥 긍정적인 평가를 주고 싶지 않는 개인적인 (뭐라고 해야 하나, 신학? 아니면 신앙?) 입장 때문에 나는 박용규 교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그 출신 학교에 대해서 일말의 꼬리표를 내걸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보수주의적 신학교. 총신대학교의 역사학자 교수가 긍정하는 학교면 그 보수성은 어떤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실제 그리고 지금의 맥코믹 신학교가 어떤지, 어떤 학풍과 신앙 노선을 이어오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그런 내게 유진 피터슨이 맥코믹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다는 사실에 뭐랄까, 보수적 신앙인들의 절대 진리 내지는 교리 신앙을 되풀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 생각을 버렸다. 맥코믹 신학교가 아니라 저자 유지 피터슨에 대한 생각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의 말 속에서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하나의 지표가 되는 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남겼던 흔적은 이런 나의 생각을 아주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지 않나 싶다.
유진 피터슨은 교리 신앙을 말하지 않는다. 진리로 일관되는 예수에 대해 잠시 쉬었다 간다. 그의 관심은 삶에 있다. 이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오해는 없어야 겠다. 그것은 교리 신앙에 입각한 청교도적 엄격함, 일종의 율법의식이 강조되는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삶이 아니다. 그 삶이 가질 수 있는 치명타는 인간의 공로 의식이다. 은혜와 율법 사이의 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칫하면 율법으로 넘어가 죄책감과 정죄 판단을 위한 법전으로 급부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루터는 행위는 의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곧 은혜를 강조한 말이다. 어찌되었든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에 어거스틴(몇개의 작은 논문을 맛보기 했고, 고백록을 읽었다)도 그랬고, 루터(역시 몇 개의 논문을 읽었고 지금 로마서 강해를 읽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범위 내에서 이해한 바임을 밝힌다)도 그랬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엄격한 거리 인식, 곧 하나님을 인간의 사리 사욕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율법적 판단에 입각한 삶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유진 피터슨이 관심을 두는 삶의 방식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에게로 향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예수가 걸었던 "길"이다. 길이 함축하고 있고 보여주는 상징성, 그 풍부한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소 모호하고 애매하게 보일지 모르나 뒤엎서 생각해보면 더욱 풍성할 수 있는 은유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길 안에서 인간은 율법으로 정죄되고, 몸과 영혼이 철저히 이원화되고, 그에 따라 몸과 관련된 것들은 모든 것들을 죄악시 해버리게 되며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만 국한된 구원 개념이 강화되는 동시에, 내세적 종말론에 입각한 천국 개념과 같은 것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대신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인정하며 긍정하고 이 가운데 이 모든 한계들을 감싸 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길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창조와 성육신 안에서, 사건과 장소 안에서, 그리고 예수 안에서 작용하는 복음(p337)"이다.
이 길은 예수 이전의 6명의 성서 인물들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이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던 1세기의 저명한 지도자 3명의 인물들을 통해서 더욱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이 길은 유진 피터슨의 표현대로 "포괄적이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끈기있게 인격성을 견지하며, 사회성을 기꺼이 끌어안으며, 정치적 관계성을 끈질기게 고수한다. 곧 세상과 인간을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다름아닌 우리가 참여하는 길이다. (p23)" 이 길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 소재는 다름 아닌 성서다. 성서의 이야기들 속에서, 성서를 풀어내는 것을 통해서, 성서의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마치 하늘에 풍성하게 날아다니는 비누방울처럼 끌어내고 터뜨려준다. 마치 움직이는 듯하게 말이다. 관념적 풀이가 아니라 이야기 듣기의 시간과 같이. 그래서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냥 설교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려운 용어들과 무수한 자료들을 탐독하며 정리해 내야 하는 논문집도 아닌 듯한 것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일까.
읽어보고, 한 권 즈음 가지고 있어도 아깝지는 않은 책 같다. 유진 피터슨의 다른 책들에도 손이 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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