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한국교회사 전사(前史) by 그루터기

제2-2강은 서정민 교수님의 3월 두 번째 주의 두 번째 시간의 강의 내용을 기록한 내용이다

4. 예수회 선교신학과 전례논쟁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의 반동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이 때 예수회가 설립되어 선교를 시작했다. 이제 살펴봐야 할 것은 예수회의 선교신학이다. 여기서는 선교신학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그것은 예수회적 유형과 반예수회적 유형이다. 그러나 단속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분법적으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구분적 도식을 그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대신 하나의 큰 경향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스펙트럼 상에서 좌와 우에 위치한 경향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 대조되는 경향성을 가진 대표적 두 유형을 제시한 것이다. 

예수회적 선교 유형은 신앙의 토착화를 주된 관심으로 가지는 것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 즉 문화에 맞추어 기독교 교리를 변증하며 집요한 설득방식을 거쳐 선교를 하는 것이다. 마테오리치와 루지애리 등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상대의 문화를 다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거기에 기독교신앙을 하나 추가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제사를 인정하는 것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신학, 선교방법이 맞는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전례논쟁이다. 결국 200년 후에 바티칸은 이 선교방식을 부정했다. 그래서 1773년에 예수회가 해산되었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가톨릭 수용에 있어서 예수회 선교경험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오히려 한국은 예수회에 제일 반대되는 신학을 가진 파리외방전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이 유형은 복음 수용지역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복음 전파자들의 입장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그들의 신앙 유형을 그대로 전래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둔다. 따라서 배타적 성향을 가지며, 절대적 신앙을 강조하는 성향을 지닌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복음 수용지에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때로는 이 때문에 이 유형을 가진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러 가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선교지로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파리외방전도회 소속 선교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왔고, 실제로 9명이나 순교했다. “진검승부” vs “목검승부”로 치자면 예수회는 목검승부였다고도 볼 수 있다. 목검승부는 져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진검승부가 벌어졌다. 한국은 유교의 근본주의 국가였고, 파리외방전교회는 가톨릭 근본주의 신학에 서 있었다. 갈등과 대결은 불가피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바로 한국이 순교성인 103인을 가진 국가라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은 죽기살기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과 중국은 예수회적 선교방식에 의해 선교가 이루어졌다. 

이 두 유형을 고려해 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의 방법론적 차이를 가진 것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기독교 복음 해석의 차이를 두 선교 유형에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방법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 측면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회 선교방식에서는 토착신앙의 형성이 중요했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면, cpu를 주면 그에 맞는 여러 부품들을 상황에 맞게 만드는 것이 예수회적 선교방식이며 신학이라 할 수 있를 것이다. 그러나 반 예수회적 선교방식과 신학은 컴퓨터 자체를 주는 것과 같다. 토착 기독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로마교회 전통과 신학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 가운데 중남미 가톨릭의 경우는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중남미의 가톨릭 이해에서는 예수회적 선교방식에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가톨릭 자체의 성격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예수회적 선교든 반 예수회적 선교든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중심에은 로마 중심 성향을 가진 가톨릭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 중심 성향의 가톨릭이라 함은 성서와 교회의 전통을 중심 텍스트로 가지고 있다는 것, 로마의 지침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라는 점이다. 중남미는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중남미를 지배했던 가톨릭 국가들은 중남미를 수탈의 대상으로 상정하여 억압했다. 이 때 가톨릭 회는 국가들의 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복음은 핍박받는 자의 편이었다. 이 차이가 가장 심했던 곳이 중남미이다. 그래서 대단히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가톨릭이 중남미 가톨릭이라 할 수 있다. 로마 중심 가톨릭 입장에서는 가장 까다로운(?) 지역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신앙은 과연 어떠한가? 나는 어떤 기독교를 믿고 있는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이 과연 순수한 신앙인가? 순수한 신앙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역사를 읽으면서 반드시 자기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boundary.egloos.com/tb/1405204 [도움말]

핑백

  • Les Goliards : [한국교회사]2-2강 2009-03-17 10:42:00 #

    ... 고 있는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이 과연 순수한 신앙인가? 순수한 신앙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역사를 읽으면서 반드시 자기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http://boundary.egloos.com/1405204 ... more

덧글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