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세미나에서 흥미로운 발제를 들었다. 한국기독교인의 국기 인식에 관한 주제였는데 태극기에 대한 국민의례를 반대한 사례가 실려 있었다. 그 일부를 인용한다.
2003년 박준규(여호와의 증인, 당시 15세)군은 의정부 영석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입학을 거부당했다. 면접 전형서에 ‘국민의례를 할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쓴 게 문제였다. 영석고는 ‘국가, 사회, 학교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특수종교를 가진 학생은 불합격 처리 할수 있다’는 내부 규정을 들어 박군을 불합격시켰다. 이에 대해 경기도 교육청에 진정을 했지만, 경기도교육청도 ‘학교의 불합격 처분이 정당하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경기도 교육청의 입장의 근거로 제시된 사건 및 판례는 바로 1976년 경남 김해여고 국기경례 거부사건의 판례였다.
1973년 9월 김해여고는 당시 국기 경례를 거부한 기독교인 학생 6명을 제적한다. 당시 9월 18일 교실에서 경례를 시키던 교사와 이를 거부하던 학생의 언쟁에서 이 사건은 시작되었다. 이 일로 국기경례가 학교 안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연이은 교련검열대회를 준비하는 제식훈련 도중 35명의 국기 경례 거부자가 적발되었다. 학교는 이들의 이름을 학교게시판에 붙여놓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모욕을 당하도록 했다. 또 추후 경례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에 한해 이름을 지워줬다. 그러나 끝까지 이에 응하지 않은 학생들이 6명이었다. 당시 교장은 이들을 모두 제적시켰다. 제적된 학생들은 모두 인근의 브니엘고로 옮겼으나, 김해여고 교장은 ‘제적된 학생은 타학교에서도 수학할 수 없다’고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해 반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퇴교당했다. 이에 학생들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제적 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3년여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학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들에 대한 제적처분은 신앙양심, 즉,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그 처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중요성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이 경례를 거부한 원고들의 행위 자체를 처분의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는 동시에 …원고들은 모름지기 위 학교의 학생들로서 그 학교의 학칙을 준수하고 교내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을진대 … 원고들의 종교의 자유역시 그들이 재학하는 위 학교의 학칙과 교내질서를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라는 취지에서 원고들이 그들의 임무를 저버림으로서 학교장인 피고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음으로 인하여 종교의 자유를 침해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여도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할 것이고 그들의 신앙에 의하여 차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볼 것이다.’
(당시 3학년을 다니다 제적된 류영화씨는 ‘잔인한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정규 수업 일수에서 10일만 더 채우면 되었는데,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여태껏 그것이 인생의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남은 일수를 채워 졸업하고 싶다고 한다.) 1970년대 일어난 국기경례 거부사건들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은 그 재판 결과들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 비슷한 사유로 소송 중이던 제천 남천교회의 판결이 김해여고의 판결보다도 1년 앞선 1975년에 이루어졌는데, 두 재판은 각각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이라는 점에서 달랐지만, 국가주의에 대항한 양심, 종교의 자유를 시험대에 올렸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남천교회 사건 재판부가 경례 거부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해여고 사건 재판부가 종교의 자유를 한낱 일개학교의 학칙 아래로 종속시켜 버린 데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더욱이 남천교회의 판결은 3년 전 판례를 뒤집은 것이었다. 1970년대 3차례에 걸친 ‘국기경례 거부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경례안할 자유’를 인정한 판결은 제천 남천교회의 판결뿐이었다. (발제자는 위의 사례들에 대한 일차자료는 "한겨레 21" 2006년 1월, 3월호에서 찾고 있었다.)
신앙의 문제는 차치하고 국가 권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국기에 대한 의례가 무의식적으로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 이상으로 지대하다. 실상 국가 권력은 알게 모르게 교육이라는 명분, 의례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을 쇠뇌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물론 위에서는 종교, 신앙의 자유를 말했지만 기본적인 자유 누림에 있어서도 국가 권력은 권력의 통제 아래에 그 자유를 두고자 하는 경향이 농후함을 알 수 있다.
신앙적인 이유로 그러한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은 국가 권력의 눈으로 볼 때에는 참으로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미 국가권력에 상당부분 동의하고 동조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본다면 안그래도 꼴사나운 종교적 표현이 더욱 밉살스럽게 보여질 수 있을 것이기도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간 신앙의 자유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신앙인들의 무대포적인 행동에 비판적 성찰이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국가 권력이 휘두르는 무의식적인 횡포에 무감각한 현실태에 대한 무지함은 보다 심각한 성찰이 필요한 것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 측면이라면 신앙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움직임이 내포한 정치적 의미는 충분히 재고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국가 권력이 다시금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이 사실이다. 국가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충직하게 따르는 것이 국민된 도리일까. 무엇이 진정한 국가의 모습인지 분명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자유의 방종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자유의 소중함이 국가라는 커다란 권력 앞에 힘없이 널부러지고 있다면 그래도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소임을 해야만 하는 걸까. 질문조차 던져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가는 것 아니겠나.



덧글
Spic 2009/06/10 22:28 # 답글
자유라는것도 국가가 있을때에 이루어 질수 있는것인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제로 해야되게 하는것도문제가 될수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국가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그 국가에서 하는걸 최소한 맞춰서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같이 너무 특이한 자유를 바란다면 국가권력으로 제재하는거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루터기 2009/06/11 22:43 #
여호와의 증인의 행동이 특이하게 여겨지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는 그만큼 국가 권력에 의해 길들여져 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종교적 선입관 내지는 불쾌감과 이 문제를 조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보이는 행동이 불쾌한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이미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고, 이미 의무이행과 같은 실천을 통해 수긍했던 사실에 대해 저항이기 때문에 유별나 보이는 것이니까요.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군대 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경험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불쾌감을 잠시 뒤로 하고, 이러한 경험을 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자는 뜻입니다.이는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한 경험 때문에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국가가 강요되었고, 강요되어야만 했으며, 강요되어도 나름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던 상황의 명분이 바로 분단이라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사실 국가의 강요가 가장 절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징병제도입니다. 이렇게 군입대 의무가 강제되어야만 했던 역사적 경험, 그리고 아무도 이것에 대해 이의를 달 수 없는 역사적 실존은, 국가 권력은 국가 권력 나름의 명분을 갖게 해 주었고, 국민은 국민 나름의 의무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게 해 왔습니다. "생존"을 이유로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본다면 국가 권력의 생존 문제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를 100%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국가 권력을 실제로 유지하고 있고, 이를 이끌어 가는 소수 지도자 그룹의 개개인의 정치적 입장은, 사실 이는 어찌보면 자신들의 권력 유지의 한 방법으로 악용할 수 있는 측면이 다분하다는 것이죠.
국가 권력이 과연 누구를 지향하는가의 문제는 실로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국가가 이렇게 보호해야만 한다는 최소한의 보호 마저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이 걸어왔던 역사는 다름아닌 이런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pic 2009/06/12 09:09 #
현실은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특별해 보이는것도 국가 권력에 의해 길들어 진게 아닙니다. 왜 우리사회가 국가권력에의해 길들여졌다고 단정짓는게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고는 국가 권력에 의해 길들여 지지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국가가 없는나라 뿐이겠네요 .
넌 여호와 증인이니깐 우리는 다 이해한다. 군대 안가도 이해할께 이렇게 쉽게 허용해 버리면 누가 군대를 가겠습니까 ?
이런 현실과 반대적인 것은 냉정하게 배척해야지 전반적으로 잘 이끌어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이상사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
이상을 지향하는것도 좋지만 현실과 너무 떨어진 이상은 사회를 더 혼란하게만 만드는 일입니다.
그루터기님은 국가 권력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심한거 같습니다.
한국을 역사를 투쟁의 역사로 보고계신거 같습니다.
그루터기 2009/06/14 23:24 #
종교적 선입관 내지는 불쾌감의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논외로 생각을 해보자는 말이었는데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네요. 국가에 길들여 지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어떤 국가냐가 문제이겠지요. 현실과 이상도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 인식은 보다 심각하고 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겠지요. 국가 권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 입장에 대해서, 그래서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신다고 보시는 그 입장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근현대 한국이 걸어온 역사를 큼지막하게 되살펴 보았을 때, 과연 제가 국가 권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게 정말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까 말이죠. 하나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것은 제가 국가 권력을 비판하는 것과 우리 국민들이 걸어왔던 길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 구분해서만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이 우리 일반 사람들이 걸어왔던 삶에 대한 비판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저는 한국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리 부모님 세대, 우리 삶의 선배들을 참으로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조선 말 나라의 위기에서 결국은 일제 치하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혹독한 식민지 시기를 거친 후, 해방을 맞이했지만, 냉전 시대의 결과에 따라 분단을 경험하게 되었지요. 그것도 모자라 6.25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승만 정권이 반공을 기치로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가슴아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권력에 대한 의지를 못 버리고 국민들의 손에 의해서 그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으니까요.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독재정치를 실시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내었죠. 그 다음은 더욱 가슴아픕니다. 군사 독재 정치가 시작되었지요. 어찌되었든 국가 발전의 명분으로 우리는 희생을 각오했습니다. 군사 독재 정치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참혹한 일을 겪지요. 5.18 민주항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날 TV에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고, 자막으로 광주에 난동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최초의 문민정부라고 할 수 있었던 것도 3당 야합으로 인해 그 정통성은 순수하지만은 않지요. 그리고 흔히 보수 진영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 열렸습니다. 이런 역사의 길이 민주주의를 향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진정한 자세로 일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또한 국가 권력에 요구했던 길이 아니라고 저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바라보셔도 죄송하지만 역사는 더욱 냉정하고 냉정하게 가슴이 아파도 철저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오히려 이런 역사의 노정 속에서 더욱 밝은 내일, 그것이 비록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 내일을 열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걸어온 길이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길들여졌다면 과연 여기까지 우리가 걸어올 수 있었을까요? 우리를 "빨갱이"들로부터의 안전을 담보해준다고, "경제"를 발전시켜 먹고 살 걱정을 안 하게 해준다고, 그렇게 국민들을 위했던 "국가 권력"에 대해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철저히 생각해보고, 어찌보면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아주 냉철하다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비판적인 정신을 가지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누리는 이 현실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이런 비유를 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들은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국가 권력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를 보내고 있을까요? 그들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국가권력이 혼란을 핑계로 현실안정을 선택하도록 일반 사람들을 독려해왔다면 과연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무비판적인 북한 사람들의 잘못인가요? 아니면 그것도 국민을 위한다고 일하는 국가 권력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국가 권력에 대해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득권,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준 역사의 모습은 그리 밝지만 않았습니다.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거죠. 국가 권력이 국민들을 위해 정말로 순수하게 열정을 가지고 봉사한다? 아마 그러기에는 이미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사람들과의 결탁이 그리 쉽게 나누어지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정말 국민을 위한 국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국가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겉돌아 나가기 쉬운 권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것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성찰이 제게는 국가 권력이 국민들을 위한 봉사의 에너지로 순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게 비판정신은 희망입니다.
종교적인 문제, 여호와의 증인 관련된 사실을 가지고 이 글을 쓴 제가 주된 관점을 흐리게 만든 잘못을 한 것 같네요. 죄송하지만 더 이상의 댓글은 사양하려고 합니다. 이정도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리고 종교적 사실과 떨어 뜨려놓고 생각해보고자 했던 제 생각이 충분히 드러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