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벌써 3주가 되어간다..
알고 지내던 교회의 한 이웃 청년 동생이 하늘나라로 돌아간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의 잔향이 채 가시기 전에..
또 한 번의 충격이 다가왔다..
의도하지 않게 그 청년 동생이 잠들어 누워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미처 준비되지 않는 채 목사님 대신 교회 저녁예배 설교를 했다..
23살 채 피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간 그 청년 동생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서..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뜻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세상 살이 모습의 결정타였다..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력함" 밖에 없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권한을 소유할 수도 업고 관장할 수도 없는 무력함..
신앙적인 용어로 빌려 말하자면 "회개" 였다..
내가 무력함을 고백하는 것..
그러고보니 회개야말로 철저한 무력함의 표시였다..
그리고 삶의 용어로 빌려 말했더니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나의 무력함에 대한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개를 말했고 사랑을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무력함을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무력함을 고백하면 살자고..
그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뒤로 여러 말이 오고 갔다..
인간은 자기 보호에 아주 능란한 듯하다..
특히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합리화가 아주 빠른 듯해 보인다..
죽음을 놓고 신앙적 의미를 겹겹이 둘러싸서..
서둘러 그 아픔을 가리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앙의 견고한 고백인가 아니면 심리적 자기 방어, 자기 암시인가..
분명치 않아 보이는 그 경계선에서 이리 저리 갈 곳을 몰라 헤메이다...
드디어 하나를 발견했다..
죽음의 타자화..
고통의 타자화..
그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고 나의 고통이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는 나는 죽음의 아픔을 겪는 순간에도..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 했고 허리가 아파 앉아 쉬어야 했으며..
눈을 붙이고 잠을 잘 곳을 필요로 했다..
나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그 무한대의 거리 앞에서 신앙적 의미로 둘러싸인 언어들의 벽 뒤에..
여전히 죽음을 타자화 시켜내는 생명의 존재인 자신을 붙들어 매고 있는 인간..
그래서 장례식은 죽은 이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조금만 더 솔직해 지거나 아니면 차라리 조금만 더 겸손해 질 수는 없을까..
내 죽음이 아니니까 이런 의미, 저런 의미로 겹겹이 서둘러 지레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고..
신앙이란 이유로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여전히 자기만의 암시를 두려하지 말고..
여전히 무력함을 고백하기에는..
회개하고 사랑을 말하기에는..
생명, 그 억척스러움은 쉽사리 인간을 놓아주지 않는 듯하다..
화장을 하고 그 청년 동생의 이생에서의 흔적을 고향 땅에 묻으러 가는 길을 배웅할 때 아주 묘한 경험을 했다..
마지막 배웅길 기도시간에 조용하던 바람결이 나뭇잎들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어 깨우더니..
마지막에는 쏴악~ 내 앞으로 방향을 바꾸어 휘돌아 나가는 것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이야기를 할 줄 알고서 입 다물고 있었는데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얼마 전 아내를 통해 들었는데, 그 청년 동생의 어머니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고..
그 청년 동생의 마지막 인사였을까..
알고 지내던 교회의 한 이웃 청년 동생이 하늘나라로 돌아간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의 잔향이 채 가시기 전에..
또 한 번의 충격이 다가왔다..
의도하지 않게 그 청년 동생이 잠들어 누워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미처 준비되지 않는 채 목사님 대신 교회 저녁예배 설교를 했다..
23살 채 피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간 그 청년 동생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서..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뜻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세상 살이 모습의 결정타였다..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력함" 밖에 없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권한을 소유할 수도 업고 관장할 수도 없는 무력함..
신앙적인 용어로 빌려 말하자면 "회개" 였다..
내가 무력함을 고백하는 것..
그러고보니 회개야말로 철저한 무력함의 표시였다..
그리고 삶의 용어로 빌려 말했더니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나의 무력함에 대한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개를 말했고 사랑을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무력함을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무력함을 고백하면 살자고..
그것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뒤로 여러 말이 오고 갔다..
인간은 자기 보호에 아주 능란한 듯하다..
특히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합리화가 아주 빠른 듯해 보인다..
죽음을 놓고 신앙적 의미를 겹겹이 둘러싸서..
서둘러 그 아픔을 가리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앙의 견고한 고백인가 아니면 심리적 자기 방어, 자기 암시인가..
분명치 않아 보이는 그 경계선에서 이리 저리 갈 곳을 몰라 헤메이다...
드디어 하나를 발견했다..
죽음의 타자화..
고통의 타자화..
그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고 나의 고통이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는 나는 죽음의 아픔을 겪는 순간에도..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 했고 허리가 아파 앉아 쉬어야 했으며..
눈을 붙이고 잠을 잘 곳을 필요로 했다..
나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그 무한대의 거리 앞에서 신앙적 의미로 둘러싸인 언어들의 벽 뒤에..
여전히 죽음을 타자화 시켜내는 생명의 존재인 자신을 붙들어 매고 있는 인간..
그래서 장례식은 죽은 이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조금만 더 솔직해 지거나 아니면 차라리 조금만 더 겸손해 질 수는 없을까..
내 죽음이 아니니까 이런 의미, 저런 의미로 겹겹이 서둘러 지레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고..
신앙이란 이유로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여전히 자기만의 암시를 두려하지 말고..
여전히 무력함을 고백하기에는..
회개하고 사랑을 말하기에는..
생명, 그 억척스러움은 쉽사리 인간을 놓아주지 않는 듯하다..
화장을 하고 그 청년 동생의 이생에서의 흔적을 고향 땅에 묻으러 가는 길을 배웅할 때 아주 묘한 경험을 했다..
마지막 배웅길 기도시간에 조용하던 바람결이 나뭇잎들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어 깨우더니..
마지막에는 쏴악~ 내 앞으로 방향을 바꾸어 휘돌아 나가는 것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이야기를 할 줄 알고서 입 다물고 있었는데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얼마 전 아내를 통해 들었는데, 그 청년 동생의 어머니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고..
그 청년 동생의 마지막 인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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