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책임인가.. by 그루터기

한 책에서 읽은 대목이다. 그대로 인용해 본다.

4.19 혁명 이후 방종에 가까운 시민들의 자유 구가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 속에서도 물리적인 힘에 의한 질서 유지보다 시민들에게 자율적 각성의 시간을 주려고 했다던 장면의 회고가 기억에 남는다. (이하는 장면의 회고 중 인용된 구절임)

연일 계속되는 데모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졌지만 민주당이 집권한 후 집권 전의 공약을 위배할 수가 없었다. 내각책임제를 실시하면서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독재적인 수법으로 정권을 유지한다면 이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밖에 다른 변명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혼란기라 해서 국민을 배신할 수 없었다. 정권을 잡은 우리로서 무슨 핑계로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총검에 의한 외형적 질서' 보다도 '자유 바탕 위의 질서'가 진정한 민주적 질서라고 믿었기에 오랫동안 자유당 정권 하에 억눌렸던 국민들이 자유가 허락된 이 때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한 번은 마음 껏 발산시키기고 나서야 가라앉을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뻔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은인자중한 것이다.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한 번 주어보자는 것이 민주당 정부의 이념이었다. 갈수록 혼란을 더해가는 사회 상황 속에서 우리는 철권으로 억압하는 대신 시간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귀와 입으로 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단단한 초석이 되는 것이다.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 혐오를 느낄 때 진실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 우리 역사 최전선, pp.126-127 中 -

자율의 이름은 참으로 멋져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낯설어 보인다. 너무나 무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되어가는 듯한 것들이 없어 보인다. 혼란만 있고 보이는 결과물들이 없다. 그래서 답답해 한다. 고속의 경제 성장을 해온 우리에게 자율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어쩌면 상당히 힘든 이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자율을 바라면서도 불도저 식의 과감하고 추진력있는(?)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모자라 이 정권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력도 여지없이 무시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게도 국민들은 이런 정권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스스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달려나왔다.

그런데 결과는 참으로 우습다. 집권여당은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운운하며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여당의 정책을 정당하게 추진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올 해보궐선거의 참패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들이 차지한 거대 다수의 의석은 굳건하게 서 있다는 그들의 수적 논리는 권력을 차지한 이들이 보여주는 명분의 휘황찬란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준다. 대중의 광장은 법치에 어긋나는 불법행위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들의 의회 민주주의 명분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그러나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은 국민의 선택. 곧 경제 발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역대 최다 득표를 한 현재의 정부와 연이은 총선에서 역시 과반을 훨신 웃도는 몰표를 던져주면서 그 정부에 보다 확고한 권력을 심어준 국민의 선택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모든 선택의 결과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이 또한 무능이 싫어 선택한 국민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면 이 자율이 가져온 타의적인 강압과 지도에 한 번 치를 떨어보는 것도 좋은 것 아닐까.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 혐오를 느껴보는 것. 그래서 자조섞인 희망일까. 언젠가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겪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같은 것이라고 할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가 단단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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