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 사이에는 / 신경림 by 그루터기

철물점 지나 농방(籠房) 그 건너가 바로 이발소,
엿도가에 잇대어 푸줏간 그 옆이 호떡집, 이어
여보세요 부르면 딱부리 아줌마 눈 부릅뜨고
어서 옵쇼 내다볼 것 같은 신발가게.
처음 걷는 길인데도 고향처럼 낯이 익어.
말이 다르고 웃음이 다른 고장인데도,
서로들 사는 것이 비슷비슷해 보이고.

그러다 내 고장에 와서 나는 남이 된다,
큰길도 골목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너무 익숙해 들여다보면 장바닥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하고,
술집은 표정 모를 얼굴들로 소란스럽다.
말이 같고 몸짓이 같아 오히려 낯이 서니
서로들 사는 것이 이렇게도 다른 걸까.

나와 세상 사이에는 강물이 있나보다.
먼 세상과 나를 하나로 잇는 강물이, 그리고
가까운 세상과 나를 둘로 가르는 강물이.

                                     - 신경림, 『낙타中 -
 

익숙해 지고 익숙해 질 수록..
가까워 지면 가까워 질 수록..
너무 가까워, 너무 익숙해 오히려 소흘해지고 멀어지는 게..
바로 사람 맘이 아닌가 싶다..

참 욕심꾸러기에, 참 얄미운 것..
사람 마음..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가장 가까운 세상부터..
그 곳에서부터 항상 새로움을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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