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 핵심적 구성요소들
3. 성령의 활동
신약성서에 의하면 성령은 하느님과는 별도의,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어떤 제3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다. 신약성서는 한 입으로 대답한다. 하느님은 영 안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다고. 그러면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신 분의 인격에 적용시켜보자. 하느님이 거두어 들어높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제는 하느님의 존재, 활동 양식 안에 살아 계시다. 즉, 영을 통해, 영 안에서 그리고 영으로서 예수는 당신 공동체에 가까이 계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하느님의 영이며, 하느님의 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포착할 수 없고, 한정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이 영은 그리스도교계 안에서뿐 아니라 삼라만상 어디서나 활동하신다. 온 세상에서 활동하신다. (79-80)
성령에 대한 바로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보존과 종교적 다원성의 인정, 다시 말해 그리스도에의 집중과 보편적 인간성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개방적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인간다움, 연대, 신심을 긍정할 수 있다. 유다교와 이슬람교 안에서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에 기원을 둔 고등종교들, 자연종교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종교적, 윤리적 집단들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인간다움, 연대, 신심을 처음부터 그리스도교를 위해 횡령하거나 무비판적으로 넘겨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한다. (83)
4. 무엇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가?
그러면 왜 어떻게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인간성, 사회성, 종교성을 이 그리스도라는 척도와 그분 영의 이끄심을 따라, 형편이 좋건 나쁘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이것부터 묻기로 하자.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가? (84) 원신앙고백(문)들은 현대적 의미의 교의들이 아니다. 신앙은 그러한 정식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식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명제들은 공동체 신앙의 법률적 확증이 아니라 그 신앙의 자유로운 표현이다. (88) 그리스도인 실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다. 예수는 어디서도 "내 말을 따라하시오"라 하지 않고 "내 뒤를 따르시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신약성서적 열쇠 개념은 그리스도 추종이다. (89) 그리스도교의 소식 전체가 겨냥하는 것은 특정한 결단, 행동, 동기, 계획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삶의 자세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의식, 새로운 근본태도, 전혀 다른 가치척도, 철저한 사고전환, 통사람의 "회개"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인 "산상설교"가 말하는 것이다. (91)
한 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확고한 채로, 이를 테면 신앙의 중심이 새로이 규정되었다. 예수의 이름이 그가 도래를 선포했던 하느님 나라를 대체했다. 하느님 믿음이 이렇게 그리스도론적으로 구체화, 아니 인격화되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한 분 하느님을 그분의 마지막 예언자요 메시아를 통해 새로이 보았고, 이 메시아 자신도 갈수록 더욱 새로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 중심성"이 "그리스도 중심성"에 의해 새로이 규정되었다. 하느님과 예수의 이 특별한 관계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적 개념이며 본질 규정적 결정화 핵이다. (98) 이 중심, 이 바탕, 이 신앙 알맹이는 물론 추상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하는 요구들 안에서 언제나 다시금 새로이 해석되었고 또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각 시대의 새로웁고 획기적인 총체적 상황은 그리스도교의 이 동일한 중심을 언제나 다시금 새로이 해석하고 구체화할 것이다. (99)
사랑의 이상은 그 얼마나 숭고한가 - 그러나 현실은 또 얼마나 참담한가! 지난 2천년간 그리스도교계는 그리스도의 이 초대, 호소, 요구들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이루어왔던가!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중심, 핵심적 구성요소들과 중심인물에 관해 충분히 살펴본 지금, 우리는 한 책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 지극히 이율배반적이고 때때로 단절되었던 역사와 대면해야 하겠다. (97)
3. 성령의 활동
신약성서에 의하면 성령은 하느님과는 별도의,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어떤 제3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다. 신약성서는 한 입으로 대답한다. 하느님은 영 안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다고. 그러면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신 분의 인격에 적용시켜보자. 하느님이 거두어 들어높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제는 하느님의 존재, 활동 양식 안에 살아 계시다. 즉, 영을 통해, 영 안에서 그리고 영으로서 예수는 당신 공동체에 가까이 계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하느님의 영이며, 하느님의 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포착할 수 없고, 한정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이 영은 그리스도교계 안에서뿐 아니라 삼라만상 어디서나 활동하신다. 온 세상에서 활동하신다. (79-80)
성령에 대한 바로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보존과 종교적 다원성의 인정, 다시 말해 그리스도에의 집중과 보편적 인간성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개방적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인간다움, 연대, 신심을 긍정할 수 있다. 유다교와 이슬람교 안에서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에 기원을 둔 고등종교들, 자연종교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종교적, 윤리적 집단들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인간다움, 연대, 신심을 처음부터 그리스도교를 위해 횡령하거나 무비판적으로 넘겨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한다. (83)
4. 무엇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가?
그러면 왜 어떻게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인간성, 사회성, 종교성을 이 그리스도라는 척도와 그분 영의 이끄심을 따라, 형편이 좋건 나쁘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이것부터 묻기로 하자.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가? (84) 원신앙고백(문)들은 현대적 의미의 교의들이 아니다. 신앙은 그러한 정식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식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명제들은 공동체 신앙의 법률적 확증이 아니라 그 신앙의 자유로운 표현이다. (88) 그리스도인 실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다. 예수는 어디서도 "내 말을 따라하시오"라 하지 않고 "내 뒤를 따르시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신약성서적 열쇠 개념은 그리스도 추종이다. (89) 그리스도교의 소식 전체가 겨냥하는 것은 특정한 결단, 행동, 동기, 계획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삶의 자세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의식, 새로운 근본태도, 전혀 다른 가치척도, 철저한 사고전환, 통사람의 "회개"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인 "산상설교"가 말하는 것이다. (91)
한 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확고한 채로, 이를 테면 신앙의 중심이 새로이 규정되었다. 예수의 이름이 그가 도래를 선포했던 하느님 나라를 대체했다. 하느님 믿음이 이렇게 그리스도론적으로 구체화, 아니 인격화되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한 분 하느님을 그분의 마지막 예언자요 메시아를 통해 새로이 보았고, 이 메시아 자신도 갈수록 더욱 새로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 중심성"이 "그리스도 중심성"에 의해 새로이 규정되었다. 하느님과 예수의 이 특별한 관계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적 개념이며 본질 규정적 결정화 핵이다. (98) 이 중심, 이 바탕, 이 신앙 알맹이는 물론 추상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하는 요구들 안에서 언제나 다시금 새로이 해석되었고 또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각 시대의 새로웁고 획기적인 총체적 상황은 그리스도교의 이 동일한 중심을 언제나 다시금 새로이 해석하고 구체화할 것이다. (99)
사랑의 이상은 그 얼마나 숭고한가 - 그러나 현실은 또 얼마나 참담한가! 지난 2천년간 그리스도교계는 그리스도의 이 초대, 호소, 요구들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이루어왔던가!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중심, 핵심적 구성요소들과 중심인물에 관해 충분히 살펴본 지금, 우리는 한 책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 지극히 이율배반적이고 때때로 단절되었던 역사와 대면해야 하겠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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