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투라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순례" 7단계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올라가는 상승단계와 우주 안에 나타난 그 분의 자취를 통하여(Through) 하나님을 정관한다.
2. 이 감관적 세계 안에 (In)있는 그 분의 자취에서 하나님을 정관한다.
3. 자연적 능력에 각인된 하나님의 형상(모든 인간을 의미한다)을 통하여 하나님을 정관한다.
4. 값 없이 주시는 갱신된 하나님의 형상(구원받은 인간을 의미한다) 안에서 하나님을 정관한다.
5. 신적 통일에 첫째 이름인 존재를 통하여 신적 통일을 정관한다. (하나님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성 삼위일체의 이름인 선(善) 안에서 성 삼위일체를 정관한다.
7. 영혼의 신비적 무아경에서 지성은 안식에 이르고 심정은 신비적 무아경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정신은 하나님을 인식한 후에 - 자기 밖에서는 흔적을 통하여, 그리고 흔적 안에서 인식하고, 자기 안에서는 형상을 통하여, 그리고 형상 안에서 인식하며, 자기 위에서는 우리를 비추는 신적인 빛의 모습을 통하여, 그리고 순례 상태에서 우리 영혼의 노력을 가능하게 해 주는 빛 자체 안에서 인식한다 - 우리의 정신은 여섯째 단계에 이르러 최고의 원리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이성의 온갖 총명을 넘어 있는 것과 피조물 안에서는 그와 비슷한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정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은 이제 이것을 바라보면서 그 위로 올라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이 감관적 세계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넘어서는 것이다. (83-84쪽)
그곳에는 신학의 새롭고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신비가 저 가장 깊은 흑암 속에서 신비스럽고 유익한 침묵의 초월적으로 비추는 어두움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는 초월적으로 가장 명백하고 초월적으로 가장 잘 비추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 속에서 모든 것이 반사되고 보이지 않는 정신들을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선의 광휘로써 넘치도록 채워줍니다. ... 그대 친구여, 신비적 비추임의 길로 곧장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가라. 감관과 오성적 활동,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비존재자와 존재자를 떠나서, 가능하다면 무지자(無知者)로서 모든 것을 저 본질과 모든 학문 위에 계신 분의 통일성에로 환원시키라. 즉 그대 자신과 만물 너머의 불가사의한 절대적 정신적 무아경으로 올라가 모든 것을 떠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온 후에 그대는 신적인 어두움의 초본질적 명백성에로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면, 은혜에 묻히고 학문에 묻히지 말라. 열망에 묻히고 오성에 묻히지 말라. 기도의 탄식에 묻히고 연구하는 독서에 묻히지 말라. (86-89쪽)
학문에 묻히지 말고, 오성에 묻히지 말고, 연구하는 독서에 묻히지 말라는 보나벤투라의 말..
말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사실 보나벤투라는 신학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분이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 이렇게 한 말이었지요..
결국 유식한 무지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중세교회사 세미나 중 내가 이해한 내용으로 적어보다..
1. 하나님께 올라가는 상승단계와 우주 안에 나타난 그 분의 자취를 통하여(Through) 하나님을 정관한다.
2. 이 감관적 세계 안에 (In)있는 그 분의 자취에서 하나님을 정관한다.
3. 자연적 능력에 각인된 하나님의 형상(모든 인간을 의미한다)을 통하여 하나님을 정관한다.
4. 값 없이 주시는 갱신된 하나님의 형상(구원받은 인간을 의미한다) 안에서 하나님을 정관한다.
5. 신적 통일에 첫째 이름인 존재를 통하여 신적 통일을 정관한다. (하나님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성 삼위일체의 이름인 선(善) 안에서 성 삼위일체를 정관한다.
7. 영혼의 신비적 무아경에서 지성은 안식에 이르고 심정은 신비적 무아경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정신은 하나님을 인식한 후에 - 자기 밖에서는 흔적을 통하여, 그리고 흔적 안에서 인식하고, 자기 안에서는 형상을 통하여, 그리고 형상 안에서 인식하며, 자기 위에서는 우리를 비추는 신적인 빛의 모습을 통하여, 그리고 순례 상태에서 우리 영혼의 노력을 가능하게 해 주는 빛 자체 안에서 인식한다 - 우리의 정신은 여섯째 단계에 이르러 최고의 원리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이성의 온갖 총명을 넘어 있는 것과 피조물 안에서는 그와 비슷한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정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은 이제 이것을 바라보면서 그 위로 올라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이 감관적 세계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넘어서는 것이다. (83-84쪽)
그곳에는 신학의 새롭고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신비가 저 가장 깊은 흑암 속에서 신비스럽고 유익한 침묵의 초월적으로 비추는 어두움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는 초월적으로 가장 명백하고 초월적으로 가장 잘 비추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 속에서 모든 것이 반사되고 보이지 않는 정신들을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선의 광휘로써 넘치도록 채워줍니다. ... 그대 친구여, 신비적 비추임의 길로 곧장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가라. 감관과 오성적 활동,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비존재자와 존재자를 떠나서, 가능하다면 무지자(無知者)로서 모든 것을 저 본질과 모든 학문 위에 계신 분의 통일성에로 환원시키라. 즉 그대 자신과 만물 너머의 불가사의한 절대적 정신적 무아경으로 올라가 모든 것을 떠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온 후에 그대는 신적인 어두움의 초본질적 명백성에로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면, 은혜에 묻히고 학문에 묻히지 말라. 열망에 묻히고 오성에 묻히지 말라. 기도의 탄식에 묻히고 연구하는 독서에 묻히지 말라. (86-89쪽)
- 보나벤투라, 김광식 역, 하나님과 하나되어 (현대신서 11), 대한기독교서회, 1982 -
학문에 묻히지 말고, 오성에 묻히지 말고, 연구하는 독서에 묻히지 말라는 보나벤투라의 말..
말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사실 보나벤투라는 신학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분이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 이렇게 한 말이었지요..
결국 유식한 무지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중세교회사 세미나 중 내가 이해한 내용으로 적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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