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음도 분주합니다. 아빠는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엄마와 함께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아빠가 된 선배와 친구들에게 그럴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가 웃음거리만 됩니다. 그런 어려운 일은 여자들이 다 알아서 할 일이고, 남자들이 할 일은 아주 쉬운 일밖에 없다나요. 그것이 바로 믿음직스러운 아빠가 되는 길이랍니다. 먼저 아빠가 된 친구는 그 이야기를 매우 쉽게 했기 때문에 아빠는 덩달아서 믿음직스러운 아빠가 되는 일을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것은 아빠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믿음직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문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음직스러운 것과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구별해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의 모퉁이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온종일 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여러 가지 놀이틀이 있습니다. 더러 손잡이가 빠진 시소와 한쪽 줄이 끊어진 그네도 있습니다. 아빠는 어쩌면 아이가 그 그네에 올라서서 푸른 하늘을 향해 힘껏 무릎을 구부렸다 펼 때 그 줄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미 지난 일이건만 등에 식은땀이 납니다. 아빠는 하나의 줄 끊어진 그네 때문에 놀이터의 다른 모든 놀이틀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뚜껑이 허술하게 덮인 맨홀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아빠는 읽었습니다. 그 기사는 아주 작았고 어떤 신문에는 숫제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맨홀은 어느 길에나 있습니다. 아빠네 동네의 길에도 있습니다. 사람을 삼킨 하나의 맨홀 때문에 모든 길이 아빠에게는 믿음직스럽지가 못합니다. 아빠는 또 사람을 치고 뺑소니친 차와, 어린이를 꾀어내 감춰 놓고는 부모한테 돈을 달라고 한 사람에 대한 얘기도 듣습니다. 하나의 뺑소니차와 한 명의 나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차와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아빠에게는 믿음직스럽지가 못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빠는 어릴 적부터 하늘의 별을 헤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너무 바쁘다 보니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아기와 함께 별을 헬 수 있기를 바라고 우러러본 하늘에는 별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사는 도시에서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됐다는 것을 아빠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것은 별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흐린 유리가 눈을 가리듯이, 흐린 공기가 가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난 아빠에게는 숨쉬는 공기조차도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강물을 보자 아빠는 수돗물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이 세상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려 하고 있건만,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것 천지입니다. 만일 아기가 자라면서 그러한 것을 알게 된다면, 아기는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자라는 아기는 얼마나 불쌍한 아기일까? 그런 아기의 아빠는 얼마나 못난 아빠일까?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부끄러워 아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자라느니 차라리 안 태어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나 아기는 이미 이 세상을 향해 출발한 뒤입니다. 아빠는 아기가 오지 못하게 막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 방법을 다 알고 있다 해도 아빠는 이미 아기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써먹지는 못할 것입니다. 가까이 오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가득 채워 주는 아기를 못 오게 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빠는 아기에게 당장 필요한 것만이라도 믿음직스럽게 고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 가스가 새어 들어올지 모르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방구들을 고치고, 너무 잘 구르는 바퀴가 달린 아기 침대를 고치고, 이 세상에 대한 아기의 첫인상이 될 방 안의 벽지도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고, 위험하거나 고장이 잘 나는 장간남은 없나, 해로운 그림책은 없나 살핍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믿음직스러워졌다고 생각한 아빠는 어느 날 놀이터의 그네도 고쳤습니다. 장차 우리 아기가 탈거라고 생각하니까 집 안의 것을 고치는 것처럼 튼튼하게 고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고치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고치는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우리 아기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 아기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아기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아마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것이라면 고칠 필요도 없겠지요. 그래서 아빠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믿고 살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다행이도 이 세상에는 줄이 끊어진 그네보다는 튼튼한 그네가 더 많고, 뚜껑 열린 맨홀보다는 뚜껑 덮인 맨홀이 훨씬 더 많으니 믿음직스러운 것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생각도 아빠는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빠의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사랑하는 마음을 믿게 되고, 이제 아빠는 아기를 이 세상에 맞이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빠가 아기를 사랑해도 다른 사랑하는 마음을 믿지 못했으면, 여전히 아기를 이 세상에 마중하는 일을 아빠는 망설이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아빠가 아기를 마음놓고 마중하고, 마음놓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랑하는 마음들에 대해 새롭게 눈뜨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놀랍고 아름다운 발견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빠는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엄마와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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