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단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김용택 엮음, 『시가 내게로 왔다 2』 中 -
김용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어디쯤이었을까. 홀로 산길을 가고 있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서서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그 물방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천천히, 천천히, 그 물소리가 죽지 않을 만큼 발소리를 낮추며, 천천히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아! 작은 옹달샘이 있었고, 그 샘으로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샘물 위에 보라색 작은 부전나비 날개 같은 산수국꽃이 피어 있었다. 꽃 그림자가 물에 가만히 떠서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흐려지고 있었다. 오래오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였다. 적막한 산이 저만큼 있었다. 가던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 그 모습을 보았다. 가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또 가보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그 물방울과 산수국꽃을 보러 왔다갔다했다. 샘물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따라 지워졌다가 다시 살아날 만하면 다시 흐려지던 산수국꽃이 지금도 내 마음에 어른거린다. 깊은 산골 샘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나이 윤동주. (25쪽)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김용택 엮음, 『시가 내게로 왔다 2』 中 -
김용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어디쯤이었을까. 홀로 산길을 가고 있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서서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그 물방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천천히, 천천히, 그 물소리가 죽지 않을 만큼 발소리를 낮추며, 천천히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아! 작은 옹달샘이 있었고, 그 샘으로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샘물 위에 보라색 작은 부전나비 날개 같은 산수국꽃이 피어 있었다. 꽃 그림자가 물에 가만히 떠서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흐려지고 있었다. 오래오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였다. 적막한 산이 저만큼 있었다. 가던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 그 모습을 보았다. 가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또 가보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그 물방울과 산수국꽃을 보러 왔다갔다했다. 샘물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따라 지워졌다가 다시 살아날 만하면 다시 흐려지던 산수국꽃이 지금도 내 마음에 어른거린다. 깊은 산골 샘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나이 윤동주. (25쪽)



덧글
ebedadonai 2009/10/08 15:34 # 답글
내가 대학 다닐 때 가장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데...화요일에 윤동주 이야기할 때 내 머리 속에 떠 올랐던 시가 바로 이거였는데...
ㅋㅋㅋ 참 재미있네 네 블로그에서 이 시를 발견하니...
암튼 고맙다...잊혀졌던 걸 다시....
요즘 나이가 먹는 지 자꾸 그 시절의 잊혀졌던 것들이 떠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