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그루터기

아버지께서 병원에 잠시 다녀가셨다..
시골에 계신 분이 서울 병원에 잠시 신세를 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병원에 잠시 머물게 되셨다. 그래서 목요일에 연락을 드렸었다..

"아버지, 몸은 괜찮으세요. 어떻게.. 오늘 저녁에 찾아뵈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아내랑 함께 갈게요. 아내 일 끝나고 가면 대략 6시 넘어서 도착할 것 같아요."

그 다음 아버지께서 대답을 하셨다..

"그래, 찾아와라. 천천히 조심해서 오고.."

순간 아버지의 나이를 짐작하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이젠 아들이 찾아오는 걸 마다하지 않으시는구나..
게다가 하나 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아직 아내와 뱃 속의 아기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
이제 11주가 넘어가는 시간 동안 그러고보니 아직 시골 계신 부모님을 직접 뵌 적이 없구나 하는 것..
아버지께서 은근히 보고싶으셨겠다 하는 생각에 죄송스럽기도 하고 어서 뵙고 싶기도 하고, 음...

문득 작년 이 맘 때 즈음의 일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일이 있으셔서 부득이하게 시골에 내려가시지 못하고 서울 우리집에서 머물게 되셨다..

그 날 저녁이었다. 주무시기 전 씻기 위해서 화장실에 들어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다시 나오셨다.
그러시더니 내게 뭔가를 하나 보이시며 이게 치약이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건 다름 아닌 클렌징 폼이었다..

때마침 치약이 거의 다 써가서 컵 속에 거의 묻혀 세면대 옆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치약을 쉽게 찾지 못하고, 그나마 찾은 것도 치약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클렌징 폼을 치약으로 물으시는 아버지의 물음 속에서..
한편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처음 생각했었다.
그렇지. 아버지도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되시겠지. 지금보다 더 많이 늙으시겠지..
그리고선 싸이월드에다가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 사진을 퍼다 담았었다..

벌써 일년이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고..
이런 저런 기억들과 마음을 안고 아내와 그리고 뱃 속의 아기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다..
무뚝뚝한 아들처럼 무뚝뚝한 아버지.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다만..
십 분 되었을까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어서 가서 어머니랑 저녁 먹고 집에 가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내가 좀 더 살가워도 될 텐데, 좀 더 있다가 와도 될 텐데..
굳이 어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병원을 나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뱃 속의 아기, 우리 사랑이에게 말해줬다..

"사랑아, 오늘 우리가 만나고 온 분이 네 할아버지, 할머니란다. 좋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사랑이를 많이 보고 싶어하셨을거야. 
 우리 사랑이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단다. 무럭 무럭 자라야 해.."

나는 지금 아빠가 되는 중이다..
아빠 노릇도 잘 해야하고, 자식 노릇도 잘 해야 할 텐데..

참, 오늘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색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해주라고 아버지가 통장에 조금 넣어주셨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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