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인간??? by 그루터기

교회직무가 처음에는 전업이 아니었고 반드시 직업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면, 미래에도 다시 부업 활동으로서의 교회직무,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이 아니라 한정된 기간의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교회직무가 처음엔 사회적 신분일 까닭이 없었다면, 미래에도 다시 특별한 신분적 특권과 상징들 없는, 인간들에 대한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교회직무가 이렇게 처음에는 신성시되지 않았고 교직자가 "거룩한 인간"으로서 일반인들과 분리되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 떠받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곳곳에서 군림하고 있는 비성서적 성직자중심주의는 다시 극복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한스큉,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284-285 - 

요즘 들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질문인데 마침 한스큉의 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접했다. 인간들에 대한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는 그렇다쳐도, 직업이 아닌 교회직무에 대한 고민은 마음을 분명 심난하게 파고드는 질문이다. 크게 따져보면 결국 경제적 자립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춘 목회자, 그러보면 얼마나 용기가 있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나 다른 능력이 있느냐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한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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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ratumdei 2009/10/17 20:16 # 삭제 답글

    경제적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실제적으로 한국에서 넉넉한 정도의 사례비를 받는 비율은 30%가 조금 넘을 겁니다. 물론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어떤 고난의 총무를 보시는 분이 그러더군요. 글고 이제는 직무에서 직업으로 많이 옮겨가는 추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이 미국 등 나라를 보면 직업을 가진채 교회의 직무를 함께 보는 사례가 많더군요.
  • 그루터기 2009/10/18 23:58 #

    통계를 보는 것과 통계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겠지요. 과잉공급되고 있는 목회자의 수와 날이 갈수록 기독교에 대해 냉담해지는 사회, 더더욱 가시적 성장에 매달리는 교단과 교회(감리교의 300백만 총력전도 운동, 예장(통합) 300만 성도 운동 등), 그 속에서 확연하게 양극화되고 있는 개교회의 현실, 미자립교회의 증가, 여전히 견고해 보이는 신앙의 보수성 등 통계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현실을 한 번 돌아볼 때 그리 쉽게만 통계를 읽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넉넉한 정도의 사례비를 받지 않는 70%, 그래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직업을 가진 목회자들, 어떤 직업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자발적 선택인지 아니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실이 정말 현시대의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대안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틀 안의 긍정적 현상인지 아니면 보다 규모있는 교회의 목회자가 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식처럼 통과의례의 시기로 거쳐가는 잠시 동안의 고난의 시기와 같은 일시적 현상인지 문제는 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목회자가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바람직하다고 100% 단정지을 수도 없을 것 같기도 하구요. 말이 길어졌는데요, 어찌되었든 뭐 쉽지 않은 현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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