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원그리스도교의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6.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유다계 그리스도교 원공동체에서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기에, 하느님과 맞먹는 다른 신적 존재에 대한 생각은 애당초 싹이 틀 수 없었다. ... 신약성서에도 아버지, 아들, 영을 함께 아우르는 정식적 표현이 매우 많다. 그러나 매우 상이한 이 세 분의 "일치", 동일한 신적 차원에서의 일체성에 관한 말은 신약성서 전체에 단 한 마디도 없다. (142) 그러므로 신약성서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 아들, 영의 관계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하느님 자체와 그 분의 깊디 깊은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 본체론적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당신을 계시하는가라는 구원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 진정 중요하다.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역동적, 보편적 역사, 인간에 대한 그분의 관계와 그분께 대한 인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역할"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아들, 영은 서로 일치한다. 다시 말해 계시 사건과 계시의 일치로서의 아버지, 아들, 영의 일치가 존재한다.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145) 그렇다면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는가? 대답: 삼위일체론은 묵시문학적 원그리스도교 패러다임으로부터 헬레니즘적 고대교회 패러다임으로의 거대한 전환의 산물이다. (146)
7.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운명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유다계 그리스도교 예루살렘 원공동체는 야고보가 처형되고 66년 유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 요르단 동쪽 지역 펠라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146) 원공동체 구성원 중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유세비우스의 주교 명단에 따르면, 재앙의 해인 135년까지 예루살렘에는 최소한 15명 이상의 유다계 그리스도인 주교들이 있었다. 유다인들이 또 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여135년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모든 유다인들이 추방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그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어린 그리스도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뚝한 지위도 종말에 이르렀다. 그 공동체의 영광은 이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넘어갔다. (147)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유다인 제자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극히 소박하게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니케아 공의회 전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그 공의회 교의에 터해 판단하려 든다면, 유다계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거의 모든 그리스 교부 역시 이단자이리라. ... 사정이 이러하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신약성서 대신 그야말로 니케아 공의회를 척도로 삼는다면, 처음 몇 세기 고대교회에서 도대체 누가 정통신앙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랴? 신약성서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문서들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간에 오늘날의 연구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적 일탈 보다는 초창기 그리스도교계와의 연속성을 더 많이 보고 있다. (153)
6.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유다계 그리스도교 원공동체에서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기에, 하느님과 맞먹는 다른 신적 존재에 대한 생각은 애당초 싹이 틀 수 없었다. ... 신약성서에도 아버지, 아들, 영을 함께 아우르는 정식적 표현이 매우 많다. 그러나 매우 상이한 이 세 분의 "일치", 동일한 신적 차원에서의 일체성에 관한 말은 신약성서 전체에 단 한 마디도 없다. (142) 그러므로 신약성서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 아들, 영의 관계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하느님 자체와 그 분의 깊디 깊은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 본체론적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당신을 계시하는가라는 구원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 진정 중요하다.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역동적, 보편적 역사, 인간에 대한 그분의 관계와 그분께 대한 인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역할"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아들, 영은 서로 일치한다. 다시 말해 계시 사건과 계시의 일치로서의 아버지, 아들, 영의 일치가 존재한다.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145) 그렇다면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는가? 대답: 삼위일체론은 묵시문학적 원그리스도교 패러다임으로부터 헬레니즘적 고대교회 패러다임으로의 거대한 전환의 산물이다. (146)
7.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운명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유다계 그리스도교 예루살렘 원공동체는 야고보가 처형되고 66년 유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 요르단 동쪽 지역 펠라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146) 원공동체 구성원 중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유세비우스의 주교 명단에 따르면, 재앙의 해인 135년까지 예루살렘에는 최소한 15명 이상의 유다계 그리스도인 주교들이 있었다. 유다인들이 또 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여135년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모든 유다인들이 추방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그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어린 그리스도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뚝한 지위도 종말에 이르렀다. 그 공동체의 영광은 이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넘어갔다. (147)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유다인 제자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극히 소박하게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니케아 공의회 전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그 공의회 교의에 터해 판단하려 든다면, 유다계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거의 모든 그리스 교부 역시 이단자이리라. ... 사정이 이러하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신약성서 대신 그야말로 니케아 공의회를 척도로 삼는다면, 처음 몇 세기 고대교회에서 도대체 누가 정통신앙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랴? 신약성서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문서들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간에 오늘날의 연구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적 일탈 보다는 초창기 그리스도교계와의 연속성을 더 많이 보고 있다. (153)
- 한스큉, 이종한 옮김, 『 그리스도교 - 본질과 역사』, 분도출판사, 2005 (재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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