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적 종교성(이것은 예수의 특징이기도 하다)의 근본체험은 (프리드리히 하일러의 이념형적 개관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체험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예언자적 종교성을 성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특징 지어진다: 자기 주장에의 강한 열망, 귀중한 가치와 사명에 사로잡힘, 확고한 이상과 목표의 실현을 위한 열정적 노력. 그러므로 예언자적 신심은 근본적으로 밖으로 정향되어 있고, 세상과 대결하며, 세상 안에서 자신을 관철하고자 한다. 따라서 예언자적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은 투쟁하는 자이거니와, 신앙에 대한 회의에서 확신에로, 불안으로부터 신뢰로, 죄의식으로부터 은총의 구원을 얻음에로 싸우며 나아간다. 하느님을 친근하게 묘사하는 시편들조차 망아적 합일은 모르며, 은총과 자비의 하느님 안에서 얻는 든든한 안전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신비주의가 그저 풍요화의 요소에 그치지 않고, 중심적 위치를 차지할 조짐이 보였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저지에 봉착했다는 것이 어디 놀날 일이랴? (563쪽)
중세 말엽과 종교개혁 시기에도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신비적 침잠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기도(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의 신뢰의 표현)였다. 성서에서 기도는 놀랄만큼 자명하고 단순하게 행해진다(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삶을 뛰어넘어): 흔히 기도는 단순함과 낙담하지 않는 현실주의에 터한, 꾸밈없는 "마음속 털어놓음"이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정향되어 있다: 청허(聽許), 도움, 자비, 은총, 자신과 타인 그리고 백성의 구원에 대한 간청. 자유로이 개진되는, 흥분하여 대들고 항의하기도 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미, 찬양 안에서 행해지는 청원들. ... 성서가 아는 것은 복잡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꾸밈없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믿음, 희망, 사랑, 감사, 찬미, 청원의 표출(각자의 각양각색 상황 안에서). (565쪽)
중세 말엽과 종교개혁 시기에도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신비적 침잠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기도(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의 신뢰의 표현)였다. 성서에서 기도는 놀랄만큼 자명하고 단순하게 행해진다(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삶을 뛰어넘어): 흔히 기도는 단순함과 낙담하지 않는 현실주의에 터한, 꾸밈없는 "마음속 털어놓음"이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정향되어 있다: 청허(聽許), 도움, 자비, 은총, 자신과 타인 그리고 백성의 구원에 대한 간청. 자유로이 개진되는, 흥분하여 대들고 항의하기도 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미, 찬양 안에서 행해지는 청원들. ... 성서가 아는 것은 복잡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꾸밈없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믿음, 희망, 사랑, 감사, 찬미, 청원의 표출(각자의 각양각색 상황 안에서). (565쪽)
- 한스큉, 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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