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엽과 종교개혁 시기에도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신비적 침잠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기도(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의 신뢰의 표현)였다. 성서에서 기도는 놀랄만큼 자명하고 단순하게 행해진다(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삶을 뛰어넘어): 흔히 기도는 단순함과 낙담하지 않는 현실주의에 터한, 꾸밈없는 "마음속 털어놓음"이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정향되어 있다: 청허(聽許), 도움, 자비, 은총, 자신과 타인 그리고 백성의 구원에 대한 간청. 자유로이 개진되는, 흥분하여 대들고 항의하기도 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미, 찬양 안에서 행해지는 청원들. ... 성서가 아는 것은 복잡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꾸밈없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믿음, 희망, 사랑, 감사, 찬미, 청원의 표출(각자의 각양각색 상황 안에서). (565쪽)
중세 말엽과 종교개혁 시기에도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신비적 침잠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기도(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의 신뢰의 표현)였다. 성서에서 기도는 놀랄만큼 자명하고 단순하게 행해진다(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삶을 뛰어넘어): 흔히 기도는 단순함과 낙담하지 않는 현실주의에 터한, 꾸밈없는 "마음속 털어놓음"이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정향되어 있다: 청허(聽許), 도움, 자비, 은총, 자신과 타인 그리고 백성의 구원에 대한 간청. 자유로이 개진되는, 흥분하여 대들고 항의하기도 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미, 찬양 안에서 행해지는 청원들. ... 성서가 아는 것은 복잡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꾸밈없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믿음, 희망, 사랑, 감사, 찬미, 청원의 표출(각자의 각양각색 상황 안에서). (565쪽)
희생과 믿음의 관계는 먹는 행위와 영양소의 관계와 같다. 희생의 행위를 하면 그 행위는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반응하고 순종하며 사는 인생으로 변환된다. 그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없고 관찰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때 그 믿음은 설명이나 개념 정의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며, 오직 희생의 실천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순종의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는 희생이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희생은 금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것이 내가 져야할 십자가다"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행위가 아니다. 희생은 덜 즐겁고, 덜 만 만족하고, 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채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채워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희생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모리아 산과 결박의 사건은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대한 꾸지람이다. 희생을 제대로 치르려면 이 분야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다 받아야 한다. 희생은 준비가 필요하고 동지가 필요하다. 길 위에서 보낸 숱한 세월과 제단을 세우던 일과, 그 모든 희생 후에도 여전히 아브라함은 희생을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필요했다. 산으로 가는 사흘 길의 여행, 두 명의 시종, 당나귀에 안장을 얹는 일, 번제를 드리기 위해 나무를 쪼개는 일, 불 단지, 칼 그리고 이삭 등 작지만 중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희생을 드리는 능력이자 준비된 마음이다.

박완서 글, 김점선 그림, 보시니 참 좋았다, 이가서, 2004.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어렵지 않게 상상하게 하고, 그려내면서 사람의 마음을 향해 잔잔하게 손짓한다. 그 손짓이 마음에 닿고 또 닿으면 어느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려진다. 꽁꽁 숨겨져 있던 것들이 환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꽁꽁 숨겨져 있는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해준다. 글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몰랐던 세상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난다. 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꿈과 같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꾸는 자가 제 모습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낸다. 사람과 사람의 제 모습을 보고, 세상의 제 모습을 보도록 이끌어내는 꿈과 이야기는 그래서 소중하다. 본래의 생명력, 의미를 되찾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답게 산다는 것은 거대한 것을 획득하는 것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느냐, 얼마나 꽁꽁 숨겨진 것들을 바로 볼 수 있느냐, 그래서 얼마나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한가득한 생명을 나누어 가느냐, 얼마나 이런 꿈을 꾸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여러 때묻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고, 특히 마지막 이야기,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의 이야기 속에서 꿈과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어린이와 만나지 못해서 죽어버린 이야기들을 살려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두름이야말로 서투른 짓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조심조심 죽어 버린 이야기들을 건드려도 보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도 봅니다. ... 이야기 선물을 마련해 놓고 아기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은 마냥 찬란하기만 합니다. 할머니가 이야기 선물이야말로 으뜸가는 선물이라고 으스대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는 동안에 터득한 지혜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물이라도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물의 비밀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참맛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사물은 제각기 가진 비밀 때문에 서로 평등할 뿐더러 자유롭습니다. 사물의 비밀은 이렇게 제각기 사물이 있게끔하는 목숨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와 있기 보다는 꼭꼭 숨어 있으려 듭니다. 사람의 꿈만이 꼭꼭 숨은 사물의 비밀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 제아무리 오래 살고 여러 사람을 사귀었어도, 일생을 통해 단 한 사람의 진실과 만난 사람보다 어찌 참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가 이야기 선물이야말로 아기에게 으뜸가는 선물이라고 으스대고 싶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입니다. 할머니는 아기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작정입니다. 아기에게 꿈을 줄 작정입니다. 아기는 커가면서 꿈을 열쇠 삼아 사람과 사물의 비밀을 하나하나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참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 오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할머니의 나날은 저녁 노을처럼 찬란해집니다. 깜깜한 밤이 오기 전에 잠깐이나마 노을이 있다는 것은 참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156-167쪽)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식으로 완성될 수 없다. 나는 성경에 흠뻑 젖어들어야 한다. 성경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성경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개인적으로 진력할 뿐 아니라 성경 구절들을 몇 시간이라도 묵상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과정은 단순히 설교를 준비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나는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특별한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설교를 듣기를 소망한다. 또한 말씀이 그들 삶의 친밀한 영역 속에서 선포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한다. 그러나 명확한 개요와 적절한 예화만으로 그런 결과를 끌어낼 수는 없다. 이런 종류의 설교는 고요함과 외로움, 집중과 강렬함을 필요로 하는 창조적인 행위다.
고요함과 외로움, 집중과 강렬함을 필요로 하는 창조적인 행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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