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줄임표.. by 그루터기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 일들을 지금 내가 기억하고
내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을 또 다시 찬양하련다.

                                                               - 시편 42:1~5 -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에서 잠시 말줄임표를...



이것을 살아라! 바로 지금! by 그루터기

이 설교는 설교가 해야 할 본연의 일을 한다. 즉, 과거에 말해지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듣는 회중의 오래고 인격적인 인간적 경험을 가지고, 그 말씀과 경험을 바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재생산한다.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about God)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from God) 말로 바꾸어 놓는다. 설교는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에 대해 듣고 읽어 왔던 것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좋은 소식에 대한 인격적인 선포로 바꾼다. 설교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다. 설교는 떡이라는 명사와 포도주라는 동사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만든다. 설교는 전에 이삭과 리브가에게, 룻과 보아스에게, 다윗가 아비가일에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베드로와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현재적이고 인격적이었던 무엇을 지금 이 순간 다시 현재화하고 인격화한다. 당신에게. 나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그저 연구 대상이 되는 문학적 인공물이 아니다. 또, 인간의 모든 경험 역시 그저 유감이나 경탄의 대상이 되는 죽은 역사가 아니다. 이 설교들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모세의 반복적인 '오늘'과 '이 날'에 대한 강조는 우리로 하여금 긴장하고 주목하고 응답하게 해준다. 인간 경험의 모든 차원이 하나님의 충만한 계시에 의해 생명과 구원에 도달한다. 모압 평원의 그 위대한 설교단에서 모세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살아라! 바로 지금!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IVP, 436-437쪽)

지금까지 설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감탄사다!



한 사람 한 사람.. by 그루터기

교육기관들은 우리 내면의 갈망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기관들은 우리에게 읽어야 할 책과 통과해야 할 시험을 제시해 줄 뿐, 그 이상으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서 우리의 가치는 주로 유용성과 수익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일을 잘 하면 보상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해고당한다. 그렇다면, 과거-지금도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렇지만-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혼에 관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찾아가던 곳인 종교기관들은 어떠한가? 그 기관들 역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사람들은 그 기관들이 자신을 하나님 판매 시장의 소비자 정도로 극진히 대우하거나, 아니면 "천국의 가구와 지옥의 온도" 문제에 대한 논술시험을 치러야 할 지독히 머리 나쁜 학생 정도로 취급한다는 점을 발견하다.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IVP, 24-25쪽)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 어려운 일이다..


EBS 지식채널, 아이의 사생활 : 아이들, 그 보물창고.. by 그루터기











  EBS 제작팀,  아이의 사생활,  지식채널,  2009.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세울 때는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우리 아이에게는 부모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을 부모가 믿고 뒷받침해줄 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철학과 원칙이 자녀의 의시와 반대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자녀교육에 대해 철학과 원칙을 세우려는 부모에게 "아이의 사생활"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다섯 가지 덕목을 선사합니다. 우선 내 아이가 가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 두뇌의 비밀, 아들과 딸의 차이, 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합니다. ... 또한 아이가 가진 능력이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한 결실로 맺기 위해 도덕성과 자아존중감을 소개합니다. ... 우리의 아이들은 보물창고이자 난해한 글이 가득한 비밀문서와 같습니다. 열쇠가 없으면 보물창고를 열 수가 없고, 암호를 모르면 비밀문서를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이 책 속에 그런 열쇠와 암호가 있습니다.   (5-7쪽)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생각과 마음,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라 할 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른 누군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순전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잡다한 것들이 섞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는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는 생각이나 마음, 느낌을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화 가능 수준이 요구될 수 있긴 하지만 이는 그리 큰 제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아이들과는 허물없는 이야기, 대화가 가능하며 더 나아가 마음으로 받아들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함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특히나 교육의 현장에서 (그것이 가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공간에서,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자세는 한 번쯤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항상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고, 지도를 받고, 통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 어리숙하고 성숙하지 못한 미완성의 존재라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과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신뢰라는 것을 주지 못한다. 이런 어른들에게 이 책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신뢰라는 것을 되짚어 주고, 그들을 보물창고로 여기며 그 보물창고로 다가서는 열쇠를 소중하고 조심스레 다루는 마음을 생겨나게 해 준다. 여기서 이해와 받아들임의 공간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실험적인 내용, 이해를 도와주는 실제적인 사례들로 여러가지 정보를 전달해 준다. 그 정보들을 꿰어가며 아이들과의 만남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읽는이의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유진 피터슨, 비유로 말하라 : 살아숨쉬는 삶의 말.. by 그루터기












  유진 피터슨, 양혜원 옮김,  비유로 말하라,  IVP,  2008.


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주변의 사람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세워 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결국 그것은 모두 같은 언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하나님 그리고 설교할 때 선포하는 하나님은, 지나가다 가볍게 혹은 따로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삶에도 깊이, 영원토록 관여하신다. ...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그리스도로 구현되고 성령이 살아 움직이는 말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거룩성을 존중하는 언어를 계발하기 위해 내가 채택한 텍스트는 예수님이다. ...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면서 저자와 독자인 우리가 함께 모든 형태의 비인격화하는 종교적 언어를 분별하고 경계할 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언제나 인격적인 언어를 좋아하고 그것을 사용할 줄 알게 되기를 바란다. (15-17쪽)

말과 행동은 일치하기 어렵다. 말은 쉽고 행동은 피곤하게 한다. 종교의 세계에서 말 만큼 쉽게 내뱉어지는 것이 없고 더불어 행동하는 것처럼 하기 힘든 것이 없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있어서 존중을 받는 세상이면서도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다. 그리스도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도교 중심에 놓여진 신앙의 체계로서 내뱉어질 수 있는 말(교리, 체계적인 신앙의 내용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행동과의 큰 불일치를 겪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과 행동의 이원화는 성과 속을 둘로 나누었고, 두드러진 이분법적인 세계 속에서 말은 말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교리는 교리대로 삶은 삶대로, 그대로 구별시켜내고야 말았다. 거룩이라는 말로 종교는 권위를 등에 업은 채 역사, 삶의 실제, 인격적인 고백에서 발 딛지 못하고 허공에 떠 다니고 있으며, 복음의 전파라는 지상 최대의 사명을 두고 타인을 향한 정죄의 말들, 다가오지 않는 구원의 은혜로 포장된 빈껍데기 말들을 쏟아놓고 있다. 행동에서는 인격이 사라진 형식과 제도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으며 합리화되고 있는가 하면,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삶 대신 도덕에 불과한 율법이 도덕주의로 인격을 옥죄고 있다. 여기서 인격과 인격의 만남은 그 어디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어 보인다. 말과 행동의 철저한 분리이다.

유진 피터슨은 여기서 말과 행동을 하나로 묶어 낸다. 그가 말하는 언어의 영성이다. 언어의 영성은 비인격화하는 종교적 언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격적인 언어로 고백해내는 삶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영성은 일상의 영성이 된다. 언어는 삶을 담보하고, 삶은 언어를 담보한다. 바로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와 기도가 그 두 축이다. 이야기와 기도를 통해 언어는 삶으로 초대되고, 삶은 언어로 인해 풍성해 진다. 여기에는 비인격이 자리붙일 곳이 없다. 이야기가 전해지고 듣는 자리는 종교적 권위가 허상의 굴레로 자리할 수 없는 곳이다.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말하는 이에게 참여하도록 잔잔히 이끌어주고 기다려준다.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인격과 인격이 만나게 된다. 그 참여는 단순한 이성적 이해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와 같은 세계, 풍성한 상상력이 삶으로 이어지는 실제로서의 세계를 살아내도록 하는 참여로서의 삶이다. 그 삶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 또한 기도이다. 기도는 이야기를 온 몸으로 드러내는 몸짓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 몸짓 한 가운데 인격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역시 하나님께서 인격으로 마주하시는 세상과의 만남이 있다. 언어의 영성이 일상의 영성으로 풍성해 지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미 창조와 언약의 거대한 이야기,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거대한 이야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와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 안에 잠긴 상태로 잠에서 깬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를 형성시켜 주는 이야기들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특히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식, 에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 예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방식, 즉 예수 방식(Jesus Way)을 익힌다. ...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과 예수님이 사신 삶은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우리가 살아내는 이야기 안에서 계속해서 순환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 곳에 있다.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263쪽)

이야기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항상 인지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도로 그려 그 내용을 해독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명령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는 모호함과 참여의 여지를 제공해 주는 언어다. ... 우리는 언어를 탈육화해서 사상을 표현하거나 규칙을 요약하거나 정보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67-268쪽)

기도는 하나님을 조작하는 언어(마술의 길)을 거절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통제 대상으로 축소하는 언어(우상의 길)을 거절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상이나 세력이나 느낌으로 비인격화하는 언어(경건주의적 자기 반성의 길)를 경계한다. 기도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사용하는 일에 전문성을 가진 영적 기술자들의 영향을 경계한다. 우리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강제하는 기술을 경계한다. 기도는 기도를 사유화하고 성도들과의 교제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는 우리 자신의 내적 성향을 경계한다. 그리고 기도는 분명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의 문제와 책임으로부터 물러나는 행위를 영적으로 은폐해 주는 핑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서 쓰는 언어이며,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 (444-445쪽)

성서의 깊이있는 세계로 들어가야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이 세계는 그만한 배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한 그만한 삶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소중하다. 배우고 사랑하고 살림을 일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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