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과 신념 체계.. by 그루터기

두 번째로 잘 나가는 종류는 영성에 대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특히 불교 관련 책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500명이나 되는 기독교 사역자들을 위한 오늘의 강연을 떠올리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 한 가지를 던지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째서 오늘날 인기 있는 책들이 기독교가 아닌 불교에 대한 책들일까요? ...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불교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반면, 기독교는 신념 체계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사역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신앙을 삶의 방식으로 재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합니다.

- 브라이언 맥클라렌, 박지은 옮김, 『다시 길을 찾다』, IVP, 2009, 19-20쪽 -


저자가 30대에 경험한 이야기를 기록했으니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10년~15년 전의 추세를 옮겨놓은 것일게다. 참고로 첫 번째로 잘 팔리는 종류의 책은 그 당시에 새로운 정보산업 시대에 부자가 되는 방법에 관한 책들이었다고 한다. 배경은 미국이다. 미국을 좋아라 따라하는 한국의 현실도 뭐 그닥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 역사 (4) by 그루터기

다. 원그리스도교의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6.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유다계 그리스도교 원공동체에서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기에, 하느님과 맞먹는 다른 신적 존재에 대한 생각은 애당초 싹이 틀 수 없었다. ... 신약성서에도 아버지, 아들, 영을 함께 아우르는 정식적 표현이 매우 많다. 그러나 매우 상이한 이 세 분의 "일치", 동일한 신적 차원에서의 일체성에 관한 말은 신약성서 전체에 단 한 마디도 없다. (142) 그러므로 신약성서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 아들, 영의 관계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하느님 자체와 그 분의 깊디 깊은 본질에 관한 형이상학적, 본체론적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당신을 계시하는가라는 구원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 진정 중요하다.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역동적, 보편적 역사, 인간에 대한 그분의 관계와 그분께 대한 인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역할"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아들, 영은 서로 일치한다. 다시 말해 계시 사건과 계시의 일치로서의 아버지, 아들, 영의 일치가 존재한다. 하느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145) 그렇다면 삼위일체에 관한 가르침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는가? 대답: 삼위일체론은 묵시문학적 원그리스도교 패러다임으로부터 헬레니즘적 고대교회 패러다임으로의 거대한 전환의 산물이다. (146)

7.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운명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유다계 그리스도교 예루살렘 원공동체는 야고보가 처형되고 66년 유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 요르단 동쪽 지역 펠라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146) 원공동체 구성원 중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유세비우스의 주교 명단에 따르면, 재앙의 해인 135년까지 예루살렘에는 최소한 15명 이상의 유다계 그리스도인 주교들이 있었다. 유다인들이 또 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여135년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모든 유다인들이 추방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그와 함께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어린 그리스도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뚝한 지위도 종말에 이르렀다. 그 공동체의 영광은 이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넘어갔다. (147)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유다인 제자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극히 소박하게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니케아 공의회 전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그 공의회 교의에 터해 판단하려 든다면, 유다계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거의 모든 그리스 교부 역시 이단자이리라. ... 사정이 이러하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신약성서 대신 그야말로 니케아 공의회를 척도로 삼는다면, 처음 몇 세기 고대교회에서 도대체 누가 정통신앙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랴? 신약성서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문서들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간에 오늘날의 연구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적 일탈 보다는 초창기 그리스도교계와의 연속성을 더 많이 보고 있다. (153) 

- 한스큉, 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 본질과 역사, 분도출판사,  2005 (재쇄) -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용기.. by 그루터기

위험이 수반되는데도 분열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추진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 제도권의 힘이 그들을 내리눌러 이미지, 지위, 안전, 금전, 권력 등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적인 확신을 외적인 행동과 일치시키는 용기를 어떻게 발견하는가? 버스의 뒤쪽으로 말없이 물러나는 사람과 앞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버티는 사람의 차이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사 파크스와 그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나는 답변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의 성실성을 파괴하는 어떤 것에 더 이상 협조할 수 없다고 깨달을 때 징벌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갑자기 바뀌게 된다.

경찰이 버스에 올라 로사 파크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투옥된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렇게 해 주세요." 그것은 아주 공손한 답변이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이런 인종 차별적인 제도에 협조하면서 내가 마음 속에 만들어 낸 감옥에 비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그 감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이상 분열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용기, 그 뒤에 따르는 징벌을 감수하겠다는 용기는 이런 간단한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타락에 공모함으로써 자신에게 부과한 징벌에 비하면 그 어떤 징벌도 무겁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통찰이 있다면, 결코 자물쇠가 잠겨지는 법이 없는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가슴의 주장을 존중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할 수 있다.

- Paker J. Palmer.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2009 (증보판 2쇄), 303-304쪽 -


 


거룩한 인간??? by 그루터기

교회직무가 처음에는 전업이 아니었고 반드시 직업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면, 미래에도 다시 부업 활동으로서의 교회직무,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이 아니라 한정된 기간의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교회직무가 처음엔 사회적 신분일 까닭이 없었다면, 미래에도 다시 특별한 신분적 특권과 상징들 없는, 인간들에 대한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교회직무가 이렇게 처음에는 신성시되지 않았고 교직자가 "거룩한 인간"으로서 일반인들과 분리되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 떠받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곳곳에서 군림하고 있는 비성서적 성직자중심주의는 다시 극복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한스큉,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284-285 - 

요즘 들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질문인데 마침 한스큉의 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접했다. 인간들에 대한 봉사로서 수행되는 교회직무는 그렇다쳐도, 직업이 아닌 교회직무에 대한 고민은 마음을 분명 심난하게 파고드는 질문이다. 크게 따져보면 결국 경제적 자립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춘 목회자, 그러보면 얼마나 용기가 있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나 다른 능력이 있느냐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한다. 음...




그리스도교 : 역사 (3) by 그루터기

다. 원그리스도교의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5. 최초의 심각한 충돌

베드로 : 이방인들에게로 향함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48년경)때까지는 어디까지나 열두 사도 동아리와 함께, 그 후에는 세 "기둥"(야고보, 베드로, 요한)으로 존경받던 동료들과 함께 예루살렘 원공동체의 지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베드로는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매우 우호적이던 관용적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한 대표자로 나타난다. ... 베드로는 유다인 가운데서 율법을 준수하는 선교를 추진했고, 그 결과 로마제국 여러 곳에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129)

야고보 : 유다교 회당과의 연결

초창기 그리스도교계의 중심지와 모(母)교회는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늦어도 사도 공의회 이후 특히 베드로가 딴 데로 떠난 후,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사람이 갈수록 중심인물로 부각되었으니, 곧 "주님의 아우" 야고보였다. ... 야고보는 사도 공의회에서 도량을 발휘하여 바울과 타협을 이끌어냈다.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은 유다교 의식 율법의 구속을 받지 않으나 예수를 믿는 유다인들은 반드시 율법을 엄수하기로.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했고, 또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조상 전래의 회당에 계속 속해 있을 수 있어야 했다. (131) 지도자 야고보와 그와 가깝던 사람들의 처형(62년~64년)은 원공동체가 "다시는 회복될 수 없게 만든 ... 재앙"이었다. 앞에 말한 박해는 어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유다교 당국의 관계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유다교 회당 간의 결정적 분열이었다. (132)

요한계 공동체 : 회당에 의한 파문

예수 믿음과 회당 소속은 양립할 수 없었다. 전에는 이 두 가지가 조화될 수 있어야 했지만, 이제 그러한 조화는 예수와 예수 공동체에 대한 회당의 끊임없는 배척 때문에 끝장이 났다. 그리하여 결국 요한의 공동체는 메시아 예수에 대한 회당의 배척에 자기들 또한 배척으로 맞섰다. 회당을 거슬러 요한 공동체는 세상의 빛이요 착한 목자이신 예수에게 온전히 집중된, 새 시대의 정신적, 영적으로 심화된 새로운 공동체로 자처했다. ... 과연 예수는 성전과 율법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 그러한 그리스도론적 언명들은 정통 유다교에게는 명백한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비난은 복음서에 뚜렷이 반영되거니와 거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율법과의 이러저런 충돌 따위가 아니라, 예수와 하느님의 동일화다. (134)

요한계 문헌들의 핵심은 동떨어져 그 자체로 옹근 시원론도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신적 존재에 관한 사변도, 인간 예수가 시간적 의미로 선재한다는 가정도 아니고, 믿음에 터한 다음과 같은 근본 언명이다. '이 세상에서의' 예수의 현존은 하느님의 주도에 힘입고 있다. ... 요한복음은 선재하는 그리스도의 형이상학적 본질과 존재를 묻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육화 전 한 신적 본질 안에 결합되어 있었다는 두 신적 위격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그러한 표상틀은 요한에게 낯설다. '신재재적 출산'이라는 표상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137) 유다계 그리스도인인 요한의 그리스도론은 아직 온전히 당시 유다교의 이해지평 안에 머물로 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유다계 그리스도교 패러다임의 한 부분이다. (138)

예수와의 연속성 : 유다인 바울의 믿음

바울은 예수의 선포를 동질변형시키기는 했지만,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신앙 알맹이"를 꾸며내지는 않았다. 유다인으로서, 그 자신의 말마따나 하느님이 단 한 번 결정적으로 놓으신 저 기초 곧 예수 그리스도 위에 계속 쌓아 올렸을 따름이다. (139) 요컨대 본격적 의미의 선재 그리스도론이나 나아가 "셋-하나 하느님"은 요한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에게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성은 단호한 하느님 중심성에 바탕하며, 또한 그 안에서 정점에 이른다. 바울의 사고 도식은 아버지, 아들, 영의 동등화가 아니라, 하느님을 인간에게 향하게 함이다. "하느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 안에서." 그리고 인간을 하느님께 향하게 함이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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