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원그리스도교의 유다계 묵시문학 패러다임
4. 교회 창설?
이스라엘과 구별되는 종교적 공동체라는 의미의 "교회"는 예수 사후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관계된 사안임이 확실하다. 부활절 이후에야 비로소 부활과 성령 체험의 감동에 바탕하여 종말론적으로 정향된 공동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의 토대는 우선적으로 어떤 고유한 의례나 제도, 특정한 직무들을 갖춘 조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직 메시아이신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이었던바, 이 고백은 세례에 의해 확증되고 그분을 기념하는 성찬례를 통해 경축되었다. (121)
우리는 유다계 그리스도교 패러다임의 교회를 단어의 가장 훌륭한 의미에서 민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 평등 그리고 형제애의 공동체 말이다. (123) 이 초창기 교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원칙적으로 평등했고, 근본적으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이 은사와 봉사(직무)의 다양성을 무질러버리는 획일적 평등주의를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125) 직무들? 당시 신앙인들은 다양한 교회적 봉사와 소명들을 결코 직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그런 개념들은 지배관계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그대로 넘겨받고 싶지 않았다. 그대신 다른 대(大)개념, 상당히 하찮은 뉘앙스를 지닌 아주 평범하고 비종교적인 단어, 모모한 관청, 공권력, 지배, 고위직, 권좌 따위를 전혀 연상시키지 않는 낱말이 사용되었으니 곧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다. (126) 내친김에 더 나아가자. 신약성서가 공동체 직무들과 관련하여, 제물을 바치는 제관이라는 종교사적 의미의 "사제"라는 단어 그리고 온갖 거룩한 종교 예식들과 결부된 칭호들을 기피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127)
시골에 계신 분이 서울 병원에 잠시 신세를 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병원에 잠시 머물게 되셨다. 그래서 목요일에 연락을 드렸었다..
"아버지, 몸은 괜찮으세요. 어떻게.. 오늘 저녁에 찾아뵈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아내랑 함께 갈게요. 아내 일 끝나고 가면 대략 6시 넘어서 도착할 것 같아요."
그 다음 아버지께서 대답을 하셨다..
"그래, 찾아와라. 천천히 조심해서 오고.."
순간 아버지의 나이를 짐작하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이젠 아들이 찾아오는 걸 마다하지 않으시는구나..
게다가 하나 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아직 아내와 뱃 속의 아기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
이제 11주가 넘어가는 시간 동안 그러고보니 아직 시골 계신 부모님을 직접 뵌 적이 없구나 하는 것..
아버지께서 은근히 보고싶으셨겠다 하는 생각에 죄송스럽기도 하고 어서 뵙고 싶기도 하고, 음...
문득 작년 이 맘 때 즈음의 일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일이 있으셔서 부득이하게 시골에 내려가시지 못하고 서울 우리집에서 머물게 되셨다..
그 날 저녁이었다. 주무시기 전 씻기 위해서 화장실에 들어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다시 나오셨다.
그러시더니 내게 뭔가를 하나 보이시며 이게 치약이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건 다름 아닌 클렌징 폼이었다..
때마침 치약이 거의 다 써가서 컵 속에 거의 묻혀 세면대 옆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치약을 쉽게 찾지 못하고, 그나마 찾은 것도 치약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클렌징 폼을 치약으로 물으시는 아버지의 물음 속에서..
한편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처음 생각했었다.
그렇지. 아버지도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되시겠지. 지금보다 더 많이 늙으시겠지..
그리고선 싸이월드에다가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 사진을 퍼다 담았었다..
벌써 일년이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고..
이런 저런 기억들과 마음을 안고 아내와 그리고 뱃 속의 아기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다..
무뚝뚝한 아들처럼 무뚝뚝한 아버지.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다만..
십 분 되었을까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어서 가서 어머니랑 저녁 먹고 집에 가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내가 좀 더 살가워도 될 텐데, 좀 더 있다가 와도 될 텐데..
굳이 어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병원을 나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뱃 속의 아기, 우리 사랑이에게 말해줬다..
"사랑아, 오늘 우리가 만나고 온 분이 네 할아버지, 할머니란다. 좋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사랑이를 많이 보고 싶어하셨을거야.
우리 사랑이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단다. 무럭 무럭 자라야 해.."
나는 지금 아빠가 되는 중이다..
아빠 노릇도 잘 해야하고, 자식 노릇도 잘 해야 할 텐데..
참, 오늘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색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해주라고 아버지가 통장에 조금 넣어주셨다."
아버지..

미실 : 공주님, 뭐라 하셨습니까? 진실과 희망과 소통으로 백성을 다스린다구요?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희망은 버거워 하구요.
소통은 귀찮아 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백성은 즉물적이에요. 떼를 쓰는 아기와도 같죠.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헌데, 밥 달라 떼쓰는 아기에게 쌀과 뗄감을 주면서 앞으로는 스스로 지어 먹을 수 있다....?
더구나 폭동을 일으켰는데도 처벌을 하지 않는 전례까지 남기셨어요.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고 단호하게, 보상은 조금씩 천천히, 그것이 지배의 기본입니다.
지금, 이 나라를 망치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덕만 : 우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항의를 한 것은 폭동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생존이라 부릅니다.
미실 : 생존! 그래서 도망을 갔군요.
덕만 : 제 말을 믿지를 못했겠지요. 세주께서 통치하는 기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요.
그렇게 늘, 공포로만 다스려 오셨으니까요.
이제 알겠습니다. 그것이 진흥대제 이후로 신라가 발전이 없는 이유였습니다.
미실 : 어찌... 그렇습니까..
덕만 : 세주님은.. 세주님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세주께서 나라의 주인이었다면 백성을 자기 아기처럼 여겼을테고
그럼 늘 얘기하려 하고 늘 이해시키려 하고 늘 더 잘되기를 바랬겠지요.
허나, 주인이 아니시니 남의 아기를 돌보는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늘 야단치고, 늘 통제하고, 늘 재우고만 싶었겠지요.
주인이 아닌 사람이 어찌 나라를 위한 꿈, 백성을 위한 꿈을 꾸겠습니까.
헌데 어쩌지요? 꿈이 없는 자는 절대 영웅이 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자의 시대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합니다.
아, 그 말씀은 감명 받았습니다. 폭풍같은 처벌과 조금씩 던지는 포상
또 전래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해서 절대로 전래가 되지 않도록 할 작정입니다.
................................................
덕만 :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에게 땅을 갖게 해 줄 것이다.
하여, 이 땅에서 단지 곡식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선덕여왕 39화 중에서 -
음..
내 삶을 뒤바꾸는 새로운 경험..미묘하고 신비스런 이 삶의 축복을 안겨다 준..
사랑하는 아내와 지금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사랑이를 위해 고른 책..
그러고 보니 조금 멋적기도 하다..
흔한 태교용 음악 CD나 동화책 대신..
지구 세 바퀴반이나 걸어 돌아다닌 시끌벅적한 이야기를 골랐으니..
하지만 꼭 조용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넘치는 생명력의 힘에 이 풍성한 이야기를 더해주는 것도..
좋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듯..
사랑아. 나중에 아빠랑 엄마랑 같이 한 번 걸어보자. 지구 세 바퀴 반..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김용택 엮음, 『시가 내게로 왔다 2』 中 -
김용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어디쯤이었을까. 홀로 산길을 가고 있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서서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그 물방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천천히, 천천히, 그 물소리가 죽지 않을 만큼 발소리를 낮추며, 천천히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아! 작은 옹달샘이 있었고, 그 샘으로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샘물 위에 보라색 작은 부전나비 날개 같은 산수국꽃이 피어 있었다. 꽃 그림자가 물에 가만히 떠서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흐려지고 있었다. 오래오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였다. 적막한 산이 저만큼 있었다. 가던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 그 모습을 보았다. 가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또 가보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그 물방울과 산수국꽃을 보러 왔다갔다했다. 샘물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따라 지워졌다가 다시 살아날 만하면 다시 흐려지던 산수국꽃이 지금도 내 마음에 어른거린다. 깊은 산골 샘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나이 윤동주.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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