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 본질에 대한 물음 (1) by 그루터기

루터의 로마서 강의도 읽다가 잠정적으로 중단했는데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언제인지는...) 다시 시작하는 일이 생겼다. 글읽기연습장을 만든 것도 그 덕인데,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 (분도출판사, 2005)를 읽어내려갈 심산이다. 읽다가 다시 잠정적 중단을 맞이할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작을 해 본다. 그냥 읽고 내려갈까 하다가 노트라도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기록을 남긴다. 나에게도 또 누군가가 들여보게 된다면 이 두꺼운 책(내용만 972쪽이다.)을 부분 부분 기억나게 해 줄 수 있지 않겠나..

가.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왜곡

1. 이상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관철, 형성된 역사, 경외하여 마땅한 연륜과 동시에 생동하는 젊음, 전세계에 퍼져 있으면서도 늘 가까이 존재하며 십억이 넘는 구성원과 엄격히 질서지어진 교계제도를 보유한 강력한 조직, 오랜 전통의 장엄한 전례, 심사숙고를 거친 신학적 교리체계, 그리스도교 서구세계 건설과 형성에서의 미증유의 문화적 공헌, 현대적 사회 교리 등등 (31-32) 그래도 끊임없는 발전과 완성에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 일종의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실재. 그러나 놀라운 발전이 파행적 전개과정이었음이 드러나고, 얼핏 보기엔 멋진 진보가 결국엔 위험한 역행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상화와 신비화와 찬미론은 "그리스도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없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탁 털어놓는 정직함이다. (33)

2. 원수상

데쉬너가 아주 구체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이른바 세속정치와 교회정치의 끈끈한 맞물림 그리고 이 종교의 세속화의 결과들, 즈 외교,농업, 무역, 금융, 교육, 문화, 검열 정책에서의 범죄, 무지와 미신의 끊임없는 유포, 성윤리, 혼인법, 형법의 무자비한 남용"에 관해 상세히 기술하는 것이다. 또한 데쉬너는 "개인적 치부, 독직, 기적이나 성유물 존숭과 관련된 경건한 사기, 온갖 유형의 위조 등에서의 성직자들의 범죄 역사"도 밝혀내고자 한다. (34-35) 그러나 그저 그림자와 진창들만 모아놓은 그러한 범죄사들은 결국엔 과장된 "교회찬가"와 마찬가지로 지겨운 것이 되지 않을까? 지겹다니, 왜? 어두운 면들만 모으는 자는 그림자 연극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36)

3. 실상 : 이중 변증법

본질과 형태 : 그리스도교라는 개념은 늘 그래왔듯이 그때 그때의 역사적, 구체적 모습에 의해 상당부분 규정된다. 그러나 사회, 교회, 신학 역사의 온갖 조류와 역류 안에서도 또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역사적 모습들 안에서도, 어떤 항구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굳건히 자신을 지켜왔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불변적인 것, "본질"이다. 그래서 온갖 경직된 "본질주의"를 거슬러 곧바로 덧붙여야겠다. 이 본질은 오직 변화하는 것 안에서만 드러난다고. 연속성은 발생 안에만, 오직 변천하는 현상 안에만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형이상학적 부동성과 무관계성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사적 "형태" 안에서만 드러난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두 가지, 본질과 형태는 떼어놓을 수 없다라는 것. 본질과 형태의 구별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개념적인 것이다. 형태없는 본질은 추상적이며 따라서 비실제적이다. 본질 없는 형태는 껍데기뿐이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비실제적이다. 또 하나는 본질과 형태는 동일시될 수 없다라는 것. 둘의 상이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본질과 형태의 구별은 개념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 바탕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37-39)

본질과 왜곡 : 긍정적인 것은 항구적인 "본질"이고, 부정적인 것은 덧없는 "형태"와 동일시한다? 아니다. 우리는 내키지 않더라도 교회의 부정적인 면, 그리스도교의 왜곡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비정상적 상태요 참 본질이 아니라 왜곡된 본질이다. (39)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긍정적 표지 아래에서뿐 아니라 부정적 표지 아래에서도 고찰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스도교는 역사를 형성하고 지배해왔지만 한편으로는 역사 앞에 맥없이 항복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특히 반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그리스도교에 끼친 역사적 영향도 우리 고찰의 근본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 (40)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by 그루터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 김용택 엮음, 『시가 내게로 왔다中 -


김용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 오만함과 당당함이라니, 황지우 대단하다. 시인이 무릇 이래야 하느니. 
삶이여, 오, 날마다 진저리쳐지는 살아 있음의 모욕이여. 
눈 들어 앞산 오래된 소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고 휘어진 내 삶의 한 구석을 한겨울의 솔바람소리로 쭈욱 펴며
쌓인 눈을 턴다. 이 진저리쳐지는 진저리여.


 


김영봉, 사귐의 기도 : 신비로움 속으로.. by 그루터기











 
  김영봉,  사귐의 기도,  IVP,  2005(초판18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엇'을 느꼈다. 교회 생활을 충실히 하고, 늘 신학적인 문제와 씨름하고 신학을 가르치면서,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 공허감은 목사가 되기 전부터 계속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헤맸다. 만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나의 신앙을 칭찬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건 아닌데'라는 번민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내 삶의 수준에 수없이 절망했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영성'에 대한 관심은 이 고뇌를 해결하려는 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10쪽)

기독교 신앙은 신비롭다. 신비로움은 그 속에 무언가 알지 못하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 있는 그 무엇,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낯선 세상을 포괄하고 있다. (믿음이라는 것이 여기서 고백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 이런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 이런 신비에 대한 고백이 믿음말고 어떤 단어로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신비롭고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는 이미 크나큰 제한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제한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을 단순화시켜버리고, 축소시켜버린다면 그것만큼 기독교 신앙을 왜곡할 위험의 소지가 다분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신비로움 속에 들어가고, 또한 그것을 고백해 내고자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이것을 영성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실제적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이다. 하나의 수단으로서 살펴볼 때에도, 이는 다소간의 노력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는 자칫하면 축소, 왜곡,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한 번 이 책을 들고 살펴보면 좋을 듯 싶다. 주의하고 조심해야하는 이유, 실제적인 노력의 필요성 및 방향성 등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전반적인 한국 개신교회가 겪고 있는 기도 생활의 문제점들에 대해 반성하면서 개선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제2부는 기도의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제3부에서는 기도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여러가지 주제를 살펴보고, 제4부에서는 기도를 돕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른 기도를 통해 맺게 되는 열매들을 살펴봄으로 논의를 마칠 것이다. (12쪽)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 장에 대한 간단한 요점을 달았고, 연구를 위한 질문, 실천을 위한 제언, 참고 도서 목록도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제공했다. 한 번 실제적으로 사용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기도는 정말 필요조건인 것 같다. 기도에 대해서 신학적 의미를 여러모로 부여하면서 확장시켜봐도, 기본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에서의 기도를 행하는 최소한의 노력,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 삶의 놀이.. by 그루터기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양혜원 옮김,  현실, 하나님의 세계,  IVP,  2006.


성 삼위일체를 구조와 맥락으로 삼고, "수많은 곳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 은유로 삼고 있는 본서의 대화는 먼저 그 놀이터를 말끔히 치운 뒤, 창조, 역사, 공동체라는 우리 삶의 세 차원들, 그 서로 교차되는 차원들을 탐험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놀이터 치우기. ... 현재 영성의 놀이터는 온갖 즉흥적 시도와 미봉책들로 상당히 어지럽혀져 있다. 나는 기독교적 삶을 성경적이고 인격적인 견지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몇몇 기본적 이야기와 은유와 용어들을 통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치워내고, 대화를 위한 공동 지반을 다질 생각이다.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 모든 사물과 사람을 점점 더 기능화시켜 가는 이 시대에, 사물과 사람의 성스러움과 거룩함에 대한 감각이 점차 스러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모든 창조를 ,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며 충만하게 표현되는 거룩한 선물로서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고 경축하고 높이는 방식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그러나 삶은 단순히 창조의 선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죄와 죽음이 주름잡고 있는 역사 속에 던져져 있기도 하다. 그것은 고통과 아픔, 실망과 상실, 재난과 악의 역사다. ...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탐구할 것이다. 그 역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생명에서 결정적 의미를 얻는다.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기독교적 삶은 타자들과 더불어, 타자들을 위해 사는 삶이다. ...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전 존재, 전 행위에 충만히 참여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31-32쪽)

유진 피터슨의 영성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저술의 첫 번째 책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영성 시리즈 첫 권을 제일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현재(2009년 9월) 그의 영성 시리즈는 이 책을 포함해서 총 4권이 나와 있다. 4권을 다 읽게 된 지금, 책의 순서에 맞추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의 영성에 대한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한 뒤 다른 주제를 조금씩 더 깊이 읽고 싶다면 조금 두꺼운 분량이더라도 첫 권을 읽고 이어지는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첫 권은 분량이 다른 책들에 비해 두껍다. 분량적으로도 두꺼울 뿐만 아니라 활자 크기, 간격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첫 권이 주는 조금의 부담인 셈이다.)

첫 권 답게 이 책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영성에 대한 신학적인 얼개를  상당히 오밀 조밀하면서도 조잡하지 않고, 깊이 있는 신학적 논의를 담으면서도 현실적이고 목회적 차원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폭넓고 속깊은 내용을 아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아주 묘한 느낌이다. 조직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조직신학은 아니며, 각 주제마다 성서 한 권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을 충실히 해석하함으로써 조직신학적인 체계를 강력하게 뒷받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학도 아니고, 예배와 함께 예배적 삶을 말하면서도 예배설교학은 아닌, 신학과 목회의 그 갖추기 힘든 균형을 갖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얼마나 공부하고 얼마나 실제적으로 살아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말그대로 영성신학이다.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영성신학은 다음과 같다.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울이는 주의,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자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을 가리킨다. '영성'은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해 계시하시는 모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영성'은 '신학'이 하나님 하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타락하지 않게끔 해준다. '신학'은 '영성' 그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이 되지 않게끔 해준다. 이 두 단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영성신학이란 신학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를 가리킨다. 신학을 살아낸다는 것은 먼저 신학을 기도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 ... 영성신학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믿는 바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기울이는 주의다. 우리 삶이 성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예배로서의 삶, 성자 하나님을 따라 걷는 희생 제사로서의 삶, 성령 하나님의 공동체를 포옹하는 또 그 공동체의 포옹을 받아들이는 사랑으로서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영성 신학은 조직신학, 성서신학, 실천신학, 역사신학 등과 나란히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는 또 하나의 신학 영역이 아니다. 영성신학이 표명하는 바 무릇 모든 신학은, 우리를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살아가는 살아 있는 창조물로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고나계 맺는 일이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 영성은 신학에서 시작되며, 신학의 인도를 받는다. 그리고 신학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사람들, 충만한 구원의 삶을 살도록 뜻하신 사람들의 몸을 통해 표현되는 바(영성)를 떠나서는 결코 참된 신학으로 존재할 수 없다.  (26-28쪽)

그래서 그의 영성신학은 삼위일체를 구조로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복음으로 함께 풀어낸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차원을 성서 속의 이야기들 속에서 은유로서 풍성히 건져올려 그 구조에 알찬 살을 덧입힌다. 이 가운데 삶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조심하여 세심하게 경계해야 할 것들과 더 깊이 삶으로 드러내야 할 것들을 교차적으로 이야기 해준다. 그리하여 성서는 삶으로 녹아들어가고, 삶은 성서와 맞닿게 된다. 이것의 총체적인 모습이 예배의 삶, 삶의 예배다. 결코 근본주의적 보수성만 자리잡고 있지않으면서, 극단적이고 급진주의적인 진보성도 중심 축이 되지 않는다. 도덕적 율법주의도 정의 실현을 위한 투쟁도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자연스러운 길이다. 그래서 이념이 아닌 (재밌는 사실은 양 극단을 볼 때 어느정도 이념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성은 교리가 이념으로, 진보성은 정의가 이념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 하루를 풍성하게 살아내는 삶, 그 인격적인 관계성이다.

내게 최고의 관심사는 삶으로서의 기독교적 삶이다.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내 정체성이 서로 일치하는 삶, 이 분주하고 번잡한 북미와 하나님 나라의 교차점에서 사는 삶, 나의 사지와 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말이다.  (577쪽)

바로 이것이 내게도 최고의 관심사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고 들었고 신나게 함께 놀이했다. 이 많은 내용들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하는 능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가 총 5권으로 출판 기획되었는데 아직 5권은 나오지 않았다. 기다려진다. 영성신학, 영적 독서, 영적 리더십, 영성 지도, 영성 형성의 순서로 짜여진 이 시리즈는 아마도 내게 있어서 최고의 읽기 즐거움을 가져다 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읽기 즐거움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삶을 살아내는 기대감도 가져다 준 책이다. 다른 그의 책들도 읽어야 겠다.

숲 속에 홀로 있을 때, 또 이 투쟁이 무의미하고 헛되게 느껴질 때, 또 대중 집회에서 번번이 거부당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나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나는 믿는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로 조금만 확고하게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기울여만 줘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흔들림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었던 그 곳에 마침내 얼음이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 평생, 아니 두 평생, 세 평생 동안 꾸준히 계속해 가라. 그러면 어느 날, 분명 마침내 그 얼음은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583쪽)


  

조심할 것.. by 그루터기

한 마디만 더 하마. 나의 아이들아, 조심하여라.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

                           - 전도서 12:12 (표준새번역 개정판) -


옛날에도 읽을 거리가 많이 있었나보다..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 건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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